사진=뉴시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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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내년 4월 유병자를 위한 실손의료보험 상품을 내놓을 전망이다. 의료비 부담이 큰 유병자들이 보장 사각지대에 놓여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자 그들을 위한 실손보험을 출시하겠다는 것.

보험사들은 고민에 빠졌다. 일반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100%를 훌쩍 넘기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사고 위험이 높은 유병자를 받아들이면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서다. 

◆보험사 "실손보험 손해율 높은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오는 연말까지 상품방안을 마련하고 내년 4월 유병자 실손보험을 출시할 계획이다.
기존 실손보험은 고혈압,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 5년간 치료 이력을 심사해 가입이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새 유병자 실손보험은 2년간 치료 이력이 없으면 가입할 수 있는 등 문턱을 대폭 낮췄다.

보험사들은 금융당국의 유병자 의료복지 정책에는 동의하면서도 관련 실손보험 출시는 달갑지 않은 눈치다.


현재 대다수의 보험사들은 정부의 판매 장려정책에 따라 간편심사 유병자보험을 대거 출시한 상태다.

고객 초기 반응은 좋았다. 보험 사각지대에 놓였던 유병자들은 암이나 당뇨 등을 보장받는 보험 가입에 호의적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국내 보험사의 간편심사보험 보유계약 건수는 202만6000건으로 2013년 63만2000건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보험료가 비교적 고가로 형성돼 보험사 입장에서 초회보험료를 높일 수 있는 안성맞춤형 상품으로 각광받았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에 앞서 보장성보험 판매를 늘리려는 보험사 입장에서도 유병자보험은 나쁘지 않은 상품이었다.


하지만 일부 보험사는 비교적 고가인 보험료로 가입률이 저조하고 한정된 유병자 수요로 인해 판매를 꺼리는 분위기다. 그런데 설상가상 유병자 실손보험상품 출시까지 진행하면 수익성 악화가 불보듯 뻔해 부담이 크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판매를 장려하고 있어 유병자 보험상품 판매 중지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유병자 실손보험이 출시된다 해도 팔수록 손해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보험사가 판매에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머니S토리] 달갑지 않은 '유병자 실손보험'

◆보험료 책정 신중해야

새로 출시될 유병자 실손보험의 고가 보험료도 문제다. 기존 출시된 유병자보험도 특성상 보험료가 일반보험보다 높게 책정됐다. 

실손보험 특성상 암이나 당뇨, 고혈압 위주의 유병자보험보다는 저렴하게 책정되겠지만 고령자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무작정 보험료를 낮추기도 힘들다. 정부는 최근 보험사들에게 내년 출시될 실손보험상품의 보험료 인하를 요구하는 상태다. 하지만 유병자 실손보험료를 억지로 낮추면 보장 혜택이 줄어들어 가입 유인이 떨어질 수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유병자 실손보험의 고가 보험료를 감안해 본인 부담률을 상향 조정하거나 보험사 공동인수 방식 등으로 보험료를 최대한 낮춘다는 계획이다.

보험료 책정도 조심스럽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상품은 보통 관련 통계가 3년 정도 축적돼야 적정 보험료 책정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보험사들이 유병자 관련 보험 출시에 나선 것이 몇년되지 않아 아직 제대로 된 통계가 축적되지 못했다.

국내 주요 손보사들이 2014년 8월 내놓은 노후실손의료보험도 관련 통계가 전무했던 케이스다. 이 보험은 보험료 책정시 노령자에 대한 손해율 통계가 없다보니 각 사가 보험개발원의 참조율을 가져다 썼다. 

하지만 판매 1년 후에도 각 사별 판매건수가 1000건도 미치지 못해 제대로 된 통계치를 만들지 못했다. 결국 노후실손보험은 최근 금감원 감리 결과 손해율이 100%를 크게 하회하는 경우에도 일반실손보험과 동일한 폭으로 보험료를 인상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보험사들은 판매건수가 미미하자 1년 판매 후 도출한 손해율을 아예 보험료 인상분에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은 특별한 통계치가 없자 일반실손보험과 동일한 폭으로 보험료를 인상했다"며 "판매건수가 적어도 산출된 손해율을 적용해 보험료 인상 여부를 결정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병자 실손보험은 아직 정확한 통계가 축적되지 못한 만큼 이런 부작용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남은 기간 금융당국과 보험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제대로 된 보험료 책정과 가입 요건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