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맥족(편의점+맥주)이 늘어남에 따라 국산맥주와 수입맥주간 '역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소주와 맥주에 붙는 세금의 기준을 오는 2020년부터 '가격'에서 '용량'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수입맥주 4캔에 1만원' 행사가 사라져 소비자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 머니S는 수입맥주 열풍에 따라 변화하는 국내 맥주시장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맥주값 오를까] (上) 움츠러든 맥주업계 대안은?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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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류시장에 외국산 맥주가 들어오면서 '수입맥주 4캔에 1만원'이라는 소비문화가 생겨났다. 이 같은 수입맥주의 공세로 맥주시장 점유율에 직격탄을 맞은 국내 주류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하이트진로가 지난해부터 일반 맥주보다 세금이 싼 발포주를 출시한 것도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이다. 
지난해 편의점 수입맥주 점유율이 사상 처음으로 국산맥주를 뛰어넘은 데 이어 올해는 격차가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체 맥주 매출에서 수입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56.3%로 국산맥주(43.7%)보다 높았다.

이처럼 수입맥주가 저렴한 가격과 다양성을 앞세워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을 점차 늘려감에 따라 국내 맥주업계의 근심도 커지는 상황이다. 그나마 하이트진로가 자구책으로 내놓은 '발포주'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 국내 주류업계도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발포주는 왜 저렴할까?… "주세법 때문"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발포주 '필라이트'. /사진=류은혁 기자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발포주 '필라이트'. /사진=류은혁 기자

대부분의 국산 맥주는 주원료인 맥아 함량이 70% 이상이다. 반면 발포주의 맥아 함량은 10% 미만이다. 발포주는 현행 주세법상 맥주가 아닌 기타주류에 속해 세금이 낮아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소비자를 공략할 수 있다. 

지난해 4월 하이트진로가 출시한 발포주 '필라이트'는 일반 맥주인 '하이트' 대비 50% 가까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현재 필라이트(500㎖)는 편의점에서 1600원에 팔리는 반면 하이트맥주(500㎖)는 2700원에 판매된다.
지난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하이트진로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20.3% 감소한 1461억원에 그쳤다. 하이트의 반기 매출이 1500억원을 밑돈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필라이트는 하이트진로의 맥주분야 중 유일하게 상승세를 기록했다. 필라이트는 출시 6개월 만에 1억캔 판매를 돌파하는 등 무서운 성장세를 보여줬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필라이트가 올해 14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하는 등 발포주는 주류업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하이트진로 외에 맥주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OB맥주도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가는 발포주시장 진출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어려울수록 발포주 뜬다?… 일본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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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 사이 국내에 출시된 주류관련 제품을 살펴보면 한국 주류산업이 일본을 닮아간다는 인상을 준다. 일본은 과거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면서 가격이 저렴한 발포주 소비가 늘어났는데 이 같은 현상이 국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
90년대 초 거품경제가 붕괴된 후 닥쳐온 불황 속에서 일본 맥주업체들은 맥아 함량을 줄이고 부재료의 사용을 늘려 세금을 절감할 수 있는 발포주를 시장에 내놓았다.

저렴한 가격으로 일본 내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던 발포주는 현재 오히려 일반 맥주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출시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발포주는 일본 주류시장에서 맥주 다각화를 촉발시킨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일본 소비자의 경우 맥아 함량 67% 이상의 맥주에서 50~66%의 1세대 발포주, 25~49%의 2세대, 기타 3세대발포주를 차례로 경험하며 맥아 함량이 축소된 맥주에 차츰 익숙해졌다. 

하이트진로가 지난 8월 신개념 발포주 '필라이트'의 출시 100일을 기념해 대형 코끼리 캐릭터 조형물을 전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이트진로가 지난 8월 신개념 발포주 '필라이트'의 출시 100일을 기념해 대형 코끼리 캐릭터 조형물을 전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면 국내 소비자들은 70% 이상의 맥주에 익숙해 10% 미만인 한국식 발포주에 아직은 익숙치 않아 보인다. 그만큼 여전히 발포주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풀이된다.

김윤오 신영증권 연구원은 "발포주는 호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일부 소비자에게 어필 중인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아직까지 큰 반응이 없는 것은 국내 소비자들이 맥아 함량이 70% 이상인 맥주에 익숙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신 연구원은 다만 "일본의 사례를 참고하면 한국도 발포주 출시 여건이 무르익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국내에서도 점진적인 발포주시장의 성장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