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에 홀리고 ‘병맛’에 물들다] ③‘B급 코드’로 재미보는 기업들
“아니 씨X, 일을 무슨 불토에 시키냐고. 나는 완전 돈만 주면 되는 줄 아나 본데, 맞아요, 맞습니다. 정확히 찾아오셨네요…(중략)…LG생활건강 마케팅부서는 X됐따리. 적어도 컨펌만은 한다고 했어야해따리. 누구든 불토에 지혜를 건들면 아주 X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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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생활건강의 세탁세제 ‘피지’를 광고한 ‘본격 LG 빡치게 하는 노래’. /사진=유튜브 캡처 |
지난해 3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개된 ‘본격 LG 빡치게 하는 노래’라는 영상에 등장하는 가사다. 제작자인 허지혜씨가 황금 같은 주말에 일을 시킨 광고주 LG생활건강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1분32초 분량의 이 영상은 1분9초를 LG생활건강을 욕하는 데 할애하다 남은 23초간 뜬금없이 이 회사의 세탁세제 ‘피지’를 홍보하면서 끝난다.
언뜻 광고주를 비난한 영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LG생활건강의 컨펌까지 마친 온라인용 제품광고다. 이 영상은 공개 직후 유튜브 조회수 200만건을 돌파할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렸고 LG생활건강의 피지 판매량도 40% 이상 증가했다. 밀레니얼세대의 트렌드에 맞춰 일부러 ‘병맛 감성’, ‘B급 코드’를 광고에 입힌 LG생활건강의 전략이 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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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의 SSG닷컴 광고 장면. /사진제공=신세계 |
◆마케팅에 ‘B급 코드’ 입히는 기업들
B급 코드는 저예산 영화를 의미하는 ‘B급 영화’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고상하고 규칙적이며 정형화된 주류문화와 달리 자유롭고 파격적이며 재미를 추구하는 비주류문화를 말한다. 적재적소에 활용하면 단숨에 소비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다수의 기업이 제품이나 브랜드광고에 B급 코드를 적용한다. 특히 소비자를 직접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유통업계 기업들에게서 활용사례를 흔하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신세계 온라인몰 ‘SSG’의 ‘쓱’ 광고다. ‘쓱’은 SSG 영문 초성을 소리나는 대로 읽은 것이다. 광고모델인 배우 공유와 공효진은 광고 속에서 SSG를 직접적으로 소개하기 보다는 “코트 하나 ‘쓱’ 해야겠다”는 등의 맥락 없는 대화를 나누며 SSG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킨다. 이 광고가 SNS를 통해 큰 관심을 받자 신세계는 아예 ‘쓱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후속광고에 실었다.
해당 광고에서 공유와 공효진은 “식석갓세?”, “싯슷기 솩~가세”, “석! 새각, 소~긋!” 등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이는 “대단한데?”, “믿음이 확~가네”, “헉! 대박, 소~름!”이란 문장의 단어 자음을 ‘ㅅ’과 ‘ㄱ’으로 대체한 것이다. SSG는 광고 노출 기간 동안 전체 매출이 전년 대비 20% 이상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B급 ‘외계어’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브랜드 마케팅에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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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가 출시 비빔면 35주년을 기념해 한정판으로 출시한 ‘괄도네넴띤’. /사진제공=팔도 |
한국야쿠르트 팔도가 팔도비빔면 출시 35주년을 맞아 출시한 ‘괄도네넴띤’도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괄도네넴띤’은 팔도비빔면이라는 제품명을 ‘야민정음’으로 대체한 것이다. 야민정음은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야구갤러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글 자음과 모음을 모양이 비슷한 자모로 바꿔 쓴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멍멍이’를 ‘댕댕이’로 쓰는 식이다. 괄도네넴띤은 온라인에서 두차례에 걸쳐 16만개 제품을 모두 완판했다. 위메프도 최근 브랜드명을 ‘읶메뜨’로 야민정음화해 마케팅을 진행 중이다.
연예인들의 유행어를 활용해 B급 광고를 제작한 사례도 있다. 팔도는 비락식혜에 배우 김보성의 ‘의리’를 접목한 광고시리즈로 큰 인기를 끌었고 버거킹은 최근 배우 김영철이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유행시킨 ‘사딸라’(4달러)라는 말을 내세워 올데이킹 세트메뉴 가격을 홍보했다.
◆인터넷 세대 취향저격… 과유불급 주의
기업들이 선보이는 B급 코드 광고는 인터넷 트렌드를 민감하게 반영한 것이다. 현재 인터넷에 유행하는 신조어나 네티즌이 열광하는 웃음코드를 명확히 짚어내면 SNS를 타고 순식간에 공유되기 때문에 제대로된 바이럴 마케팅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아예 유튜브, 페이스북 등 인터넷플랫폼용 광고를 따로 제작하는 사례도 늘었다. 이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광고시장의 성장세가 높은 데다 인터넷플랫폼용 광고가 기존의 정통 미디어용 광고보다 표현이 자유로워 네티즌의 호응을 얻어내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KT경제경영연구소 디지에코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광고시장은 전년 대비 2% 성장한 약 12조원 규모다. 이 가운데 온라인광고는 전년 대비 5.9% 성장했고 디지털광고 가운데 모바일광고 비중은 무려 62%에 달했다. 또한 디지털광고 미디어렙 ‘메조미디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모바일에서 하루 4~5회 광고를 보는 소비자 중 32.3%가 20대였고 10대도 22.5%를 차지했다. 유행에 민감한 1020세대가 주요 광고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기업들도 이들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광고에 힘을 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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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메프의 ‘읶메뜨’ 마케팅. /사진제공=위메프 |
그러나 B급 코드를 활용한 마케팅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관심을 목적으로 유행과 재미만을 좇으려다 자칫 반감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팔도의 ‘괄도네넴띤’과 위메프의 ‘읶메뜨’ 마케팅의 경우 ‘한글을 파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B급 코드는 소비자와의 소통을 확대해 위축된 소비를 회복시키는 수단으로 활용 가능하다”며 “소비자가 열광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내는 정서마케팅으로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친근감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무분별한 B급 코드 남용은 자칫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한 저급한 이미지를 심어줄 위험이 있다”며 “치밀한 구상을 바탕으로 B급 코드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5호(2019년 3월26일~4월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