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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탄천 주변의 아파트단지. /사진=이미지투데이 |
서울의 주택 임대시장에서 전세가 줄고 월세가 늘어 아파트의 경우 월세 비율이 2013년 22.9%에서 2016년에는 34.3%까지 증가했다. 그에 따라 주택을 임차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월세 부담으로 삶이 더욱 팍팍해졌다. 올 3월 기준 전·월세 가격이 가장 비싼 곳은 서초구로 평균 전세가격이 7억7081만원, 평균 월세는 보증금 1억8746만원에 월 190만9000원에 달했다. 전·월세 거래 중 월세 비율이 2016년 이후 감소해 지난해 27.0%로 줄어들었다. 다만 월세 거래 감소는 20~30평대의 높은 월세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며 초소형 매물에서는 월세 거래가 고착화돼 있다시피 하다. 그러니 원룸에 살아야 하는 미혼의 저소득층 청년과 대학생들의 월세 부담은 여전하다.
◆싼 월세 찾아 멀리 멀리
신촌·홍대 권역의 대학에 다니는 한 대학생이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구로구에서 통학하기에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지하철을 타야 하므로 교통비가 들어가고 통학에 많은 시간이 걸려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데도 굳이 학교 근처에 살지 않는 것은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 원룸 월세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교통비를 감안해도 돈이 더 적게 든다는 것이다. 등록금이 연간 약 700만~800만원이므로 부모로부터 넉넉하게 생활비 지원을 받지 않는다면 등록금에 육박하는 연간 월세 총액이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서울 대학가에서 전용면적 33㎡ 이하 원룸의 평균 월세 가격이 지난 연말 기준 54만원이었다. (부동산 O2O 플랫폼 ‘다방’) 보증금은 1000만원이 기본이다. 월세가 가장 비싼 곳은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교육대학교 근처로 평균 56만원이었다. 서초구 자체가 임대료가 비싼 동네이니 대학생이 거주하는 원룸 또한 비쌀 수밖에 없다. 서초동은 교대 학생보다 강남권에 밀집한 기업에 다니는 회사인 수요가 더 많다. 그들은 가난한 대학생에 비해 월세 지불 능력이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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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낙산 일대. /사진=머니투데이 김휘선 기자 |
그 다음으로 원룸 월세가 비싼 대학가로는 홍익대(54만원), 건국대·경희대·한양대·연세대(48만원), 숙명여대(47만원), 고려대(45만원), 중앙대(43만원), 서울대(41만원) 순이다. 홍익대 근처는 원래 비싼 곳이 아니었지만 젊은이들이 모여들면서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동네로 변해 월세가 올라갔다. 대학생들만 애꿎게 주거비용을 더 부담하게 된 셈이다. 어떤 홍익대 학생이 원룸을 홍대에서 1.7㎞ 떨어진 연세대 앞에서 구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역시나 조금이라도 더 싼 월세를 찾아서였다.
서울에서 월세가 가장 싼 대학가는 한국 최고의 명문대로 꼽히는 서울대(41만원)로 대학가 월세 수준은 대학의 수준과는 무관했다. 서울대로 가는 길목의 신림동은 주거비용이 싼 동네로서 특히 언덕 위로 높이 올라갈수록 가격은 내려간다. 서울대가 1975년에 신림동으로 이전하면서 고시 공부하는 청년들이 모여들어 인근에는 자연스레 고시촌이 형성됐다. 고시생 수요가 많아지면서 고시 학원들이 생겨나고 고시 자료 구하기도 용이해지면서 각종 고시 공부하기에 인프라가 좋아졌다. 저렴한 물가도 가난한 고시생들에게는 매력적이었다.
그러다가 ‘2017년 사법고시 폐지’가 발표되고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는 등 국가고시 제도 변화에 따라 고시생이 줄고 그 자리를 직장인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동네 자체는 교통이 불편하지만 신림역이나 서울대입구역까지만 나오면 2호선을 타고 강남에 금방 갈 수 있어서 주거비를 절약하려는 직장인들이 모여들었다. 낮에는 회사생활을 하고 밤에는 집에 들어와 잠만 자면 되니까 돈을 모으기 위해 다소 열악한 환경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다. 초기의 신림동 일대 고시원은 겨우 책만 볼 수 있을 정도의 기본 요건만 갖췄지만 지금은 상당수 고시원이 풀옵션을 갖춘 원룸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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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뉴타운 7구역. /사진=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
◆양질의 일자리가 임대료 높여
서울교대 인근을 제외한 서울 서초구 전체의 원룸 평균 월세는 68만원으로 12만원이 더 비싸다. 그 외 원룸의 평균 월세가 높은 곳은 강남구(59만원), 종로구(55만원), 마포구·서대문구(54만원) 순이고 낮은 지역은 금천구(33만원), 도봉구·강북구(34만원), 구로구·은평구(35만원), 노원구(36만원) 순이다. 투·쓰리룸 월세가 가장 높은 지역도 강남구(100만원), 서초구(94만원), 중구(85만원) 등으로 서울 지역 평균인 70만원을 훌쩍 넘는다. 연봉이 높은 양질의 일자리가 많은 지역의 월세가 높게 형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지역 고용동향 심층분석 1: 지역의 일자리 질과 사회경제적 불평등’ 보고서(2019년 봄호)를 보면 고소득 일자리가 강남권에 많이 분포해 있어 서울 안에서도 지역에 따른 양극화가 존재한다. 수도권과 지역 간 격차는 더욱 뚜렷하다. 고소득비중(소득 4분위), 고학력비중(전문대학 이상), 고숙련비중(전문가·관리자)을 조합해 '일자리 질 지수'를 산출했는데 전국에서 질 좋은 일자리의 8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시·군·구별로는 일자리 질이 상위권에 속하는 39개 지역 중 19개구가 서울에 속해 있고 경기지역까지 포함하면 상위 지역 31개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많은 곳에서 월세가 높게 형성되는 것은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다. 토지를 국가가 소유해 땅의 소유권을 갖지 못하는 중국에서도 대도시의 중심지 아파트 매매가격이 매우 높을 뿐 아니라 원룸 월세도 한국의 상황을 무색하게 할 만큼 비싸다.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인근에 1980년에 지은 원룸 아파트 월 임대료가 130만원이라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한국의 고시원 수준으로 화장실도 없는 원룸(6.7㎡)이 70년이나 됐는데도 5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렸다는 보도도 있었다. 베이징의 주택 가격은 2016년 이후 65%나 올랐다.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은 베이징에서 월급의 거의 3분의 2를 월세로 내야 한다고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원룸 평균 월세는 지난해 7월말 기준 3334달러로 400만원에 육박한다. 임대료가 높기로 유명한 뉴욕의 원룸 월세(2956달러)보다 높다. 샌프란시스코의 투룸 평균 월세는 4602달러다. 샌프란시스코의 월세가 이처럼 높은 것은 역시 고급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베이 지역’으로 불리는 샌프란시스코 및 인근 실리콘밸리에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이 위치해 있다. 유명 IT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연봉도 매우 높아서 높은 월세를 충분히 감당한다.
필자의 지인이 서초구 삼성타운 근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데 전용 85㎡가 ‘보증금 1억원에 월세 250만원’, 전용 120㎡는 ‘보증금 1억원에 월세 340만원’에 거래된다. 누가 그렇게 많은 월세를 내고 들어와 사는지 물어보니 지금 세입자는 그 아파트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위치한 삼성그룹 회사에 다닌다고 한다. 부부 둘이 모두 다닌다니 두 사람 연봉을 합하면 그 정도 월세는 기꺼이 감당하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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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신도시. /사진=이미지투데이 |
◆지역에 따라 월세 차이 커
다른 사람 수준에 맞추려 할 때 감당하기 힘들다면 시장원리로 돌아가는 세상에 한탄할 일만은 아니다. 싼 월세를 찾아 나서야 한다. 같은 서울 안에서도 월세가 지역에 따라 크게 차이난다. 다가구형 건물의 원룸보다 주거환경이 나은 아파트형 원룸·원베드룸(10평대) 월세는 강남권에서 100만원 수준이다. 송파구의 잠실리센츠(2008년 입주)는 전용면적 27.68㎡의 임대료가 보증금 1000만원에 월 115만원, 강남구 역삼동의 대우디오빌플러스(2004년 입주)는 전용면적 34.41㎡가 1000만원에 90만원, 선릉역우정에쉐르(2004년 입주)는 전용면적 22.12㎡가 1000만원에 78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노원구 상계동에서는 절반의 금액이면 된다. 상계동 주공1~6단지(1987~1988년 입주)는 전용면적 32㎡의 임대료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5만원이다. 지하철 더블역세권으로 강북 4대문 안에 직장이 있으면 4호선을, 강남에 직장이 있으면 7호선을 타면 된다. 아파트가 지어진 지 30년이 넘고 시내 가까이 거주할 때에 비해 출퇴근 시간이 더 걸리지만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적당한 선에서 양보해야 하는 순리에 따른 선택이 필요하다. 요즘은 월세를 아끼려고 입주자들이 라운지와 부엌·욕실 등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에 사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또한 같은 지역 안에서도 매물의 상태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므로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는 취약한 주거환경을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필자는 30대 중반에 가족이 많은 상태에서 지하에 룸살롱이 있는 상가건물의 주택에서 월세로 산 적도 있다. 돈이 적을수록 가급적 절약을 해 돈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모아가야 한다. 한편 미혼이라면 결혼해 둘이 함께 살 경우 1인당 주거비용을 비롯해 각종 생활비가 줄어든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돈을 모아서 결혼하겠다는 생각보다 결혼해 돈을 모으겠다는 생각도 괜찮다. 어떤 알뜰한 청년은 원룸에 혼자 살다가 결혼 후에도 그냥 그 원룸에서 둘이 살면서 돈을 부지런히 모아 지금은 아파트에 산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4호(2019년 5월28~6월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