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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21일 서울 한강 위 성수대교가 굉음과 함께 무너졌다. 출근하는 직장인과 등교하는 학생들로 분주하던 오전 7시40분쯤, 성수대교의 상판 48m가 순식간에 붕괴하면서 시내버스와 승용차 등 6대가 한강으로 추락했다. 무려 32명이 목숨을 잃고 17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였다.
성수대괴 붕괴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70년 와우시민아파트 붕괴와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의 '3대 붕괴 참사'로 불리고 있다.
예고된 인재, 총체적 부실이 빚은 참사
성수대교 붕괴는 명백한 '인재'였다. 다리의 철제 트러스를 연결하는 용접 불량, 안일한 안전 점검과 관리 부실, 설계 기준을 초과한 과적 차의 통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1979년 개통 이후 점진적으로 노후된 다리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특히 등교하던 무학여고 학생 등 10대 학생들이 많이 탔던 16번 시내버스가 추락하면서 국민적 충격은 더욱 컸다. 당시 서울 강남에 거주하던 학생들이 성동구 학교로 통학하던 중 변을 당했고 이 사고를 계기로 서울시교육청은 강남·북 교차지원 제도를 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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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이 지난 오늘, 무엇을 배웠는가
사고 직후 검찰은 설계사·시공사·감리 및 관리 책임자들에 대해 수사를 벌여 다수를 기소했다. 대교 건설과 관리 등에 관여한 시공업체 관계자와 공무원들은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공범으로 처벌받았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전국의 교량과 공공시설에 대한 전면 안전 점검을 지시했고, 부실 건설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강경 방침을 밝혔다.참사 이후 정부는 시설물 안전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교량과 터널 등 주요 시설물에 대한 정기적인 정밀안전진단을 의무화했다. 무너졌던 성수대교는 1997년 7월 더 튼튼한 모습으로 다시 개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