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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예술공장의 마스코트가 된 써니. /사진=한국관광공사 |
이팝나무 푸른 길을 500m 남짓 걷자 팔복예술공장을 알리는 녹슨 원기둥이 보인다. 뒤쪽에는 옛 공장 이름 ‘쏘렉스’가 적힌 굴뚝이 있다.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장면이다. 안으로 들어서며 ‘팔복’이라고 되뇐다. 흥미로운 이름이다. 팔복은 여덟 선비가 과거에 급제한 터라 이름 붙은 팔과정(八科亭)과 이 일대를 대표하는 마을 신복리(新福里)에서 따왔다. 팔복동에는 1969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공장단지가 들어섰다. 공장에서 일하던 이들에게는 ‘팔과’나 ‘신복’이 길하고 복된 이름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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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예술공장의 옛 이름이 보이는 굴뚝. /사진=한국관광공사 |
◆예술공장, 기억 저편의 ‘써니’
팔복예술공장은 1979년 카세트테이프를 만드는 공장으로 문을 열었다. 카세트테이프 공장은 호황을 누리다가 1980년대 말 CD가 나오면서 위기를 맞았다. 회사는 1987년 노조와 임금 협상 과정에서 공장을 폐쇄했고 노동자들은 400일 넘게 파업으로 맞섰다. 공장은 결국 1991년 문을 닫고 25년 동안 방치됐다. 그러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산업 단지 및 폐산업 시설 문화 재생 사업’에 선정돼 기지개를 켰다.
지난해 3월 팔복예술공장이 세 동 가운데 A동을 중심으로 문을 열었다. B동은 교육센터, C동은 다목적 공간으로 준비 중이다. A동은 2층 건물이다. 밖에서 보면 공장과 예술, 두 가지 면이 드러난다. 공장은 옛 건물의 나이테를 잃지 않았고 예술은 그 외관에 제 개성을 발휘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A동과 B동을 잇는 붉은색 컨테이너 브리지가 낡은 건물에 생기를 더한다. 옥상 쪽도 눈길이 간다. 난간 밖으로 살짝 삐져나온 ‘아트 박스’ 컨테이너가 위태하면서도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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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공간을 기억하는 방법. /사진=한국관광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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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테이프 공장 시절의 출근부. /사진=한국관광공사 |
로비 오른쪽에는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 ‘써니’가 있다. 공장의 특징을 살려 1970~1980년대 정서를 반영했다. 자연스레 2011년 개봉한 영화 <써니>가 떠오르고, 보니엠의 노래 ‘Sunny’가 귓가에 맴돈다. 하지만 카페 써니는 카세트테이프를 만들던 ‘썬전자’와 노동자 소식지 <햇살>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러니 공장에서 일한 여성들을 기억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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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동과 B동을 잇는 컨테이너 브릿지. /사진=한국관광공사 |
◆문 없는 화장실, 전시장 환골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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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예술공장 2층 전시실. /사진=한국관광공사 |
먼저 문이 없는 화장실이 전시장이다. 실제 사용하던 화장실로 변기마다 카세트테이프, 케이스에서 분리된 테이프 등이 가득하다. 유진숙 작가의 ‘하루’라는 작품이다. 당시 여직원은 약 400명인데, 건물 내 여자 화장실의 변기는 네 칸뿐이었다. 화장실 옆 벽에는 ‘예쁘게 빛나던 불빛, 공장의 불빛~’으로 시작하는 가수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 노랫말이 적혔다. 그 시절 그들에게 전하는 뒤늦은 위로인 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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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을 떠올리게 하는 옥상 그라운드. /사진=한국관광공사 |
옥상은 인근 공장 지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반쯤 허물어지거나 골격만 남은 구조물이 몇 개 있는데 그 안에도 작품을 전시한다. 공간과 작품이 어울려 이색 전시를 연출한다. 건물로 들어오기 전, 바깥에서 올려다본 ‘아트 박스’도 있다. 컨테이너가 만드는 프레임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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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아트박스 전시. /사진=한국관광공사 |
실내가 답답할 때는 두 컨테이너 사이 들마루를 권한다. 초록 그늘 아래 느긋하게 머물러봄 직하다. 그곳에서 보면 주변의 푸른 나무가 예술이다. 카세트테이프 세대라면 옛 추억에 젖어 까마득하게 잊은 노래 한 구절을 절로 흥얼거릴지 모르겠다. 팔복예술공장 관람은 무료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다. 카페 써니 영업시간은 오전 10시~저녁 7시(월요일 휴무)다.
☞당일 여행 코스
자연 코스: 팔복예술공장→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덕진공원
예술 코스: 팔복예술공장→전주남부시장&청년몰→국립무형유산원→서학동예술마을
☞1박 일 여행 코스
첫째날: 팔복예술공장→덕진공원→전주 한옥마을→전주남부시장&청년몰
둘째날: 전주향교→서학동예술마을→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 <사진·자료=한국관광공사(2019년 여름시즌 숨은 관광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