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다는 ‘밖’이 춥다. 그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안’이 언제나 영원히 따뜻하기만 한 건 아니다. 두렵지만, 불안하지만, 그 모든 걸 떨쳐내고 밖으로 나서는 건 오히려 따뜻한 걸 지키기 위해서다. 

◆ '진배기원조할매국밥' '홍구반점', 40억원의 연매출

모든 정답은 현장에 있다. 이 말은 너무 당연하기도 하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정답을 찾아 꾸준히 현장을 찾아다니는 이는 많지 않다. 책상 앞에 앉아 책으로, 인터넷으로 몇 개 자료를 찾아보곤 나름의 정의를 내릴 뿐 현장으로 직접 나가진 않는다. 왜? 그냥 귀찮으니까.

야구인으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은 “사람은 원래 움직이기 싫어한다. 게을러질 수밖에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그걸 이겨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자신이 게을러진 걸 탓하지 않고, 다른 이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다. 스스로든 또는 누군가의 관리에 의해서든 게을러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 다른 어느 경영전문가는 “내 삶도 컨트롤 못하면서, 어떻게 세상이 내 편이 됩니까. 잠자는 시간, 먹는 양, 공부계획 이런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의 것도 컨트롤 못하면서 어떻게 세상이 내 맘대로 될 수 있나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자신의 몸을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월간외식경영 사진제공
월간외식경영 사진제공

월간외식경영에 소개된 이상준 대표는 현장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하는 것 같다. 어느 지역의 상권이 궁금하면 새벽에도 그곳을 찾아가볼 정도로. 그런 에너지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현재 전국 97개 매장을 운영 중인 '진배기원조할매국밥', 퓨전중식 프랜차이즈 '홍구반점', 그리고 양념유통과 물류 등을 통해 40억원 내외의 연매출을 올리고 있는 그는 철저히 현장 중심주의자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계획대로’ 움직여나간다.
군 전역,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한 후 스물넷 나이. 1997년 '파리크라상'에 입사했다. 베이커리 반죽과 제조가 자동으로 되는 기계의 설계를 맡았는데 당시, 일본 현지에 가서 컨베이어 시스템 설계도 직접 배워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큰 보람을 느끼진 못했다. 

고향이 대구인데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것도, 일본을 자주 오가야만 했던 것도 그에게는 약간의 부담이었다. 그래서 딱 1년 후 퇴사를 결심하고, 외식업 현장을 더 가까이서 느끼며 지켜볼 수 있는 직업을 택하고자 했다. 주류영업이 바로 그것이었다.


◆ 칵테일 바, 이자카야, 프랜차이즈 사업까지
5~6년간의 주류영업을 통해 그는 몰라보게 업그레이드됐다. 사람의 디테일을 어떻게 보고 판단하며 응대해야 하는지, 매순간 여기저기서 뜻하지 않게 터지는 사건사고들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나가야 하는지, 그 많은 노하우들이 자연스레 몸에 배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컴퓨터 책상 앞에선 결코 배울 수 없는 것들. 그의 경영능력을 뒷받침하는 스펙이자 가장 큰 경쟁력이기도 했다.

“주류영업을 하다가 스물아홉 되던 해, 2002년에는 내 매장을 운영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동안 모아놓은 돈, 대출,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받아 '베네치아'라는 칵테일 바를 오픈했다. 당시의 칵테일 바는 마른안주와 과일이 곁들여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베네치아'에서는 멍게나 해삼, 가자미튀김과 같은 고급 해산물을 준비했다. 그래서인지 대기업 대리점을 운영하는 분들이 비즈니스 미팅 공간으로 많이 찾아 와주셨고, 일 매출 400만원을 올릴 정도로 반응 또한 나쁘지 않았다. 맥주나 소주보다는 판매단가가 높았기 때문에 손님들을 대하는 서비스라든가 대화 스킬 등등의 직원교육에도 많은 신경을 썼었다. 그렇게 2년 정도 운영하다가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의 매장으로 탈바꿈해보고 싶어서 한 게 일본식 이자카야 '북해도'였다. 당시엔 새로운 시도였지만, 운이 좋게도 또 손님들 반응이 좋았다. 점점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됐던 시기였다.”

'미즈'라는 이름의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당시에 잘 나가던 '쇼부'를 경쟁상대로 한 선술집 프랜차이즈. 때마침 우연한 기회로 TV 광고에도 노출되면서 순식간에 20여개 매장까지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자만하지 않고 늘 현장을 찾아다녔다. 전국의 가맹점주들을 일일이 만나고 다녔다.


“난 사업형 기업이지만 가맹점주들은 생계형 매장이다. 하루 벌어야만 겨우 가족들에게 돈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 또한 어릴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서 묵묵히 가족들을 챙겨야했기 때문에 가맹점주들의 어려움이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절대 게을러질 수 없다. 여유는 사치다. 부지런함은 거기서 비롯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어려움이 닥쳤다. 모든 걸 믿고 맡겼던 영업본부장이 회사의 많은 자산을 가지고 도망갔던 것. 당시, 사람에 대한 실망감은 극에 달했다. 그럼에도 그는 넋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 다시 주류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 관심이 있어야 ‘다른 것’이 보인다

시련 속에 기회도 함께 있다고 했던가. 주류영업을 하는 와중에 우연히 '진배기원조할매국밥' 지일순 회장을 만난다. 그 인연으로 '진배기원조할매국밥' 프랜차이즈 본사로 스카우트되어 들어가게 되고, 그가 입사한 이후엔 매달 직영점·가맹점을 각각 1개씩 오픈해나가는 성장속도를 보이게 된다. 2010년 10여개 매장밖에 없던 이 브랜드는 전국 180여개 매장까지 오픈하기에 이른다.

“낮은 원가와 높은 수익성의 돼지국밥 아이템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30대 후반 정도 됐을 때였나. 지일순 회장님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내가 대표이사 자리에 앉게 된 거다. 그만큼 나를 많이 믿어주셨다. 이후엔 2010년, 퓨전중식 프랜차이즈 '홍구반점'을 론칭해 10여개 매장까지 오픈하기도 했다.”

오는 10월 중에는 각각 132m²(40평) 규모의 2층짜리 건물에 세 번째 브랜드 'The 힘센장어들'을 오픈 준비 중이다. 보양식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가격이 높아 서민음식으로 자리 잡을 수 없던 장어 아이템을 좀 더 대중화해보기로 한 것. 민물장어와 바다장어, 꼼장어를 삼겹살과 키조개관자에 곁들여먹는 삼합의 레퍼토리도 가져왔다. 이외에도 현재 중국 현지에서 판매되고 있는 북한식 냉면, 느끼함을 없애주는 시원한 조개탕 등등의 메뉴도 갖춰, 연령대 가리지 않고 누구나 선호할 수 있는 장어전문점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똑같은 곳을 가더라도 난 늘 다른 길로 걷는 편이다. 그렇게 이것저것 둘러보며 골목이, 그리고 매장들이 어떻게 바뀌고 있고, 변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들여다본다. 그래야만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걸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는다. 관심이 있어야 보인다. 똑같은 걸 보고도 어떤 이는 그냥 지나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성공 포인트를 짚어낸다. 내가 현장을 좋아하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싶다.”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지 않으니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몸의 각 부분 또한 활성화된다. 젊다는 건 이런 걸 두고 얘기하는 게 아닐까. 그는 지금, 가장 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