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부가 올해 하반기 중 '가상자산 현물 ETF'(상장지수펀드) 도입 방안을 마련하기로 하면서 기대감과 우려가 공존한다. 지난해 1월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허용된 뒤 국내에서도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그동안 금융위는 리스크 전이 등을 이유로 금지해왔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당시 정책 공약집에 가상자산 현물 ETF 발행을 허용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금융당국도 허용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청년 자산 증식 및 금융 접근성 제고를 위함이다.
글로벌 트렌드지만 가상자산 ETF 관련한 제도가 미비한 상태인 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특히 정부가 가상자산 ETF 관련 프레임워크를 구성할 때 가상자산 현물 ETF의 기초자산 가격 기준, 커스터디 주체, AP(지정참가회사)의 위험헤지를 위한 파생상품 시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돼 관심을 모은다.
23일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가상자산 현물 ETF의 단순 도입을 넘어 한국에서 확실히 자리를 굳히려면 세 가지 조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그는 금융위원회가 올 초 개최한 '가상자산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다수의 관련 보고서 작성과 함께 여러 세미나에도 이름을 올리는 가상자산 관련 전문가다.
첫 번째 조건: 기초자산 기준
김갑래 선임연구위원이 제시한 첫 번째 전제조건은 가격 기준 설정이다.가상자산 현물 ETF의 기초자산 가격 기준을 국내 거래소로 할지, 글로벌 거래소로 할지를 두고 기준 설정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내 거래소 기준을 적용하면 국내 시장 상황을 반영할 수 있고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거래소 신뢰도 및 거래량이 해외에 비해 낮고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이 가격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단점으로 꼽힌다. '김치 프리미엄'은 금이나 가상자산 등의 자산이 국제 시세보다 국내에서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현상을 말한다.
반면 글로벌 거래소 기준을 따를 경우 시장 대표성이 높아지고 김치 프리미엄을 완화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이 경우 환율 변동 리스크가 존재하며, 해외 거래소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단점이 있다.
김 연구원은 "김치 프리미엄이 지속해서 축소되지 않는다면 국내 주요 5개 가상자산 거래소의 가중평균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할지, 글로벌 시세를 기준으로 할지에 대해 정책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법률적 논의보다는 금융정책적인 접근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
두 번째 조건: 수탁회사
두 번째로는 가상자산 ETF 제도 도입을 위해선 커스터디(수탁사업)를 어떤 곳이 맡을지도 명확히 해야 한다. 커스터디는 가상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 핵심 인프라다. ETF 발행 시엔 해당 자산을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 수탁해야 하며, 이에 따라 관련 법정 정비도 불가피할 전망이다.김 연구원은 "미국 등 주요 국가처럼 신탁회사가 수탁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를 위해 자본시장법령을 개정해 신탁업자가 가상자산을 취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자본시장법상 신탁업자는 가상자산을 수탁 자산으로 취급할 수 없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세 번째 조건: AP의 파생시장
마지막으로 그는 가상자산 ETF의 주요 참여자인 AP가 시장 충격 없이 가상자산을 매입하고 환매하기 위해선 리스크 헤지(위험 회피) 수단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내엔 가상자산 관련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 시장이 아직 미비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그는 "가상자산 선물 시장 도입이나 파생상품 인프라 마련이 필요하다"며 "미국은 CME(시카고상업거래소)의 비트코인 선물을 활용해 헤지하고 있고, 홍콩도 현물 ETF와 선물을 연계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상자산 현물 ETF를 국내 금융투자업자들이 발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중요한데 이러한 기반 없이 제도를 도입하면 국내 시장이 해외 사업자들의 놀이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청년 자산 증식과 금융 접근성 제고를 위해 가상자산 ETF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금융·가상자산 시장 간 연계에 따른 리스크, 실물 경제 영향, 투자자 편익 등을 감안해 도입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자본시장법 개정 등 법령 정비, 관련 인프라 및 투자자 보호장치도 구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