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가 무너진다. ‘세계 뷰티 트렌드의 중심’이라는 타이틀을 내놓은 지는 한참이다. 경쟁 상대로조차 보지 않던 중국에 밀렸다. 최근에는 일본에게도 뒤처지고 있다. 중국과 사드 갈등으로 ‘한한령’이란 직격탄을 맞은 탓이 크다. 냉각기류가 흐르는 동안 시장은 빠르게 변했다. 가성비 중심의 독특한 콘셉트는 일회성이라는 독이 됐다. K만 붙여 내놓으면 팔린다는 자만심이 화를 불렀다. 지금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 K뷰티의 몰락 원인과 현황, 뜨는 C뷰티와 J뷰티에 대해 짚어본다.(편집자주) 

중국 상하이의 심장 인민광장 래플스씨티 1층 대형 팝업 스토어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K뷰티를 배우고 즐기는 뷰티 스쿨 콘셉트/사진=뉴시스DB
중국 상하이의 심장 인민광장 래플스씨티 1층 대형 팝업 스토어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K뷰티를 배우고 즐기는 뷰티 스쿨 콘셉트/사진=뉴시스DB
“K뷰티는 항상 같은 모습으로 같은 얼굴, 똑같은 눈썹, 같은 표정이다. 이런 동일성을 지닌 K뷰티에 중국 소비자들은 지쳤다.” 


“‘한국은 10단계, 미국은 3단계’. 겹겹이 쌓는 한국 여성의 기초화장 습관에 열광하던 미국 여성들. 일종의 의식이자 뷰티철학처럼 추종한 것도 잠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금세 10단계 스킨케어 과정을 포기했다. K뷰티는 그야말로 반짝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영원한 것은 없었다. ‘메이드인 코리아’라면 일단 발라보던 시절을 떠나보내며 K뷰티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드 사태를 계기로 매년 10%대 수출 성장률을 보이던 K뷰티가 주춤한 사이 중국 뷰티 브랜드, 이른바 C뷰티가 조금씩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에도 기술력이나 제품력 등에서는 여전히 K뷰티가 우위였다. C뷰티는 K뷰티가 혁신적인 제품과 기술력에 도취돼 있을 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서서히 한국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날개 없는 추락… 적은 내부에 

마침 미샤, 이니스프리, 더페이스샵으로 대변되는 로드숍이 휘청거릴 때였다. K뷰티가 국내와 해외에서 성장하게 된 데는 로드숍의 활황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유통시장 역시 빠르게 변했다. 유통 판도가 H&B(헬스앤뷰티)숍, 멀티브랜드 매장으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온라인 채널 재편 등으로 다변화하면서 로드숍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것은 시작이었다. 

한·중 간 유통시장 역시 함께 얼어버렸다. 국내 화장품 매출의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던 중국 ‘따이공’(일명 보따리상)들의 활동이 크게 위축됐고 중국 단체관광객들의 방문이 끊기면서 주요 관광지 오프라인 매장 매출이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를 비롯해 중국 내 한국 화장품 로드숍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았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중국이 수입품 통관기준을 강화하면서 기존 유통 흐름에도 제동이 걸렸다. 


그 사이 중국 로컬브랜드의 기술력은 성장 가속도를 붙였다. 거대 자본을 통해 국내 우수 화장품 연구진들을 영입하기 시작한 것. 이들이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중국 로컬 브랜드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럭셔리화장품 시장은 몰라도 중저가 화장품시장은 이미 C뷰티 브랜드 입지가 상당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이야기. 이제는 기술은 물론 마케팅 노하우까지 습득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개성 없는 K뷰티… 주도권 잡는 J뷰티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중국 소비자들의 외면이다. ▲사드 사태 ▲유통시장의 변화 ▲국내 기술진 유출 이라는 외적인 요인 외에 차별성 없는 제품 구색이 내부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홍콩 시장조사전문 회사 체리블러썸의 에밀리 궈 연구원은 “중국 소비자들은 K뷰티가 고수하는 균일한 외모에 지쳤다. K뷰티는 똑같은 얼굴과 눈썹을 모두가 똑같이 하고 있다”며 “중국 소비자들은 오랫동안 K뷰티를 따라했지만 이제 자신들의 개성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내 민족주의로 인한 여론몰이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 중국의 즈후나 웨이보와 같은 소셜미디어 사이트에는 K뷰티를 넘어 C뷰티 사용을 지지하는 게시물들이 여럿 공유되고 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한국 화장품보다 우수한 국내 미용 제품’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은 C뷰티 브랜드의 페이스클렌저와 달팽이 에센스를 추천하며 “특정 중국제품이 한국제품보다 품질이 더 낫다”고 설명했다. 

C뷰티의 부상과 함께 일본의 J뷰티도 중국에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일본문화를 접하면서 기술력과 효능으로 접근하는 J뷰티를 새로운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트너 L2에 따르면 사드 이후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하는 반면 일본은 15% 내외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 최근 중국에서는 나스, 끌레드뽀 보테, 코세 등 일본 뷰티 브랜드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사정에 정통한 뷰티업계 관계자는 “K뷰티는 2급 이하 도시에서는 아직까지 긍정적이나 4대 주요 도시와 1급 도시에서는 이미 J뷰티에 대한 선망과 변화가 나타난 지 오래”라며 “무엇보다 K-뷰티는 내놓기만 해도 팔린다는 점만 믿고 정교한 마케팅을 펼치지 못했고 가격 관리에도 실패하면서 앞으로도 고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아시아 최대 시장인 중화권에서 주도권을 잡은 일본은 세계 무대에서도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미국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K뷰티는 그동안 아시아 뷰티기업의 미국 진출 길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J뷰티에 비해 압도적 증가율과 시장점유율도 두배 이상 벌려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 언론, 인플루언서들이 ‘K뷰티를 이을 새로운 트렌드’로 J뷰티를 주목하면서 점점 그 자리를 J뷰티에 내주고 있다. BBC 등 외신들은 “그동안 한국에 밀렸던 J-뷰티가 작정이라도 한듯, 세계 화장품시장의 주도권을 차지했다”며 “K-뷰티가 트렌디한 아이템으로 주목받았다면 J-뷰티는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세련됨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중구 명동거리/사진=뉴스1DB
서울 중구 명동거리/사진=뉴스1DB
◆K뷰티면 다 된다? 품목 다양화 숙제
그렇다면 K뷰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우선 K뷰티라는 컨셉에만 치중하기 보다는 강력한 브랜드 구축이 필요하다. 다수의 한국 기업들은 ODM·OEM 생산 형태로 K뷰티 브랜드를 양산하는 데만 열을 올려왔다.

식품의약처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화장품 제조판매업자수는 1만개를 넘어선 상태. 매달 평균적으로 100~200개 브랜드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화장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K뷰티가 호황기를 맞으면서 누구나 쉽게 브랜드를 만들고 일종의 대박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손만 대면 모두 성공할 것처럼 보였다”면서 “대부분 업체들이 마스크팩 또는 기초 라인 한두 제품만 출시한 후 시장에 접근했지만 이렇다 할 히트제품 없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브랜드 이미지와 스토리를 확실하게 구축하고 자체 브랜드 마케팅을 전개해가는 것도 중요하다”며 “K뷰티의 명성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소비자들에게 각 브랜드 이미지와 스토리를 각인시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품목의 다양화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지난해 1~6월 기준 중국이 한국에서 수입한 화장품 수입액 중 기초화장품 비중이 95.9%에 달할 정도로 기초화장품에 편중돼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색조 화장품, 헤어케어, 향수 등의 시장으로도 시야를 넓힐 필요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미국시장의 경우 다양한 인종과 피부색을 가진 문화 특성을 반영해 다양한 색상 구성을 갖추고 촉촉한 질감을 특징으로 하는 포인트 메이크업 제품 개발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중국 관계자는 “이미 C뷰티 기업의 신제품이나 브랜드 출시 속도는 외국 기업들을 추월했다”며 “K뷰티는 뛰어난 기술력으로 럭셔리·프리미엄 시장에서의 우수성을 어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33호(2020년 2월25일~3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