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자신의 괴로움을 꺼내는 것을 꺼려한다. /사진=전은지 기자
많은 이들이 자신의 괴로움을 꺼내는 것을 꺼려한다. /사진=전은지 기자

'첫째로 살면서 얻은 것은 소리 내지 않고 우는 법과 울어도 티 내지 않는 법'이다.

한때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뜨겁게 달궜던 'K-첫째로 살아남는 법'이라는 글에 담긴 내용이다. 맏이인 기자 역시 이 글을 읽으며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사실 첫째, 둘째, 막내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길 꺼려한다. 우리는 직장·학교 등에 다니며 '괜찮은 척'하는 법을 배운다.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 '괴로워도 그렇지 않은 척'하는 법을 말이다.


즐거운 일은 흔쾌히 다른 이들과 공유하면서도 본인의 고통, 괴로움, 슬픔은 나누려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감정들을 꽁꽁 숨기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마음의 병을 겪는 사람의 수가 줄지 않고 있다.

지난 2019년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국내 성인 10명 중 3명(30.8%)은 스트레스를 '대단히 많이' 또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35.1%)와 30대(38.8%)가 다른 연령에 비해 스트레스 인지율이 높았다.

최근 방송가에는 '금쪽같은 내새끼' '서클하우스' 등 심리전문가가 등장해 사람들의 마음을 케어해주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이는 시청자들이 심리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선호한다는 반증이다. 이처럼 사람의 심리 상태를 진단해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지만 직접 자신의 심리상태에 관해 알아보려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이에 기자가 직접 상담센터를 찾아 심리상태를 진단받아봤다.

이번생에 상담은 처음이라… 무료로 상담받기

기자가 찾았던 심리 상담센터의 모습. 개인상담실에서 상담이 이뤄졌다. /사진=전은지 기자
기자가 찾았던 심리 상담센터의 모습. 개인상담실에서 상담이 이뤄졌다. /사진=전은지 기자

먼저 전문적인 상담을 받기 위해 집 근처에 있는 여러 심리 상담센터와 연락을 취했다. 사설센터의 경우 적게는 7만원에서 많게는 12만원으로 한 회기(1회) 상담이 가능했다. 사실 이 정도 금액이라면 자신을 위해 흔쾌히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이다. 다만 보통 상담 횟수가 적게는 5회, 대부분 10회 이상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청소년이나 젊은 청년들에게는 만만치 않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상담을 포기하면 안 된다. 시·도 등 각 지자체에서 시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운영하는 도립센터를 찾는 방법도 있고 관련 상담 프로그램 비용을 지원해주는 정책도 있기 때문이다. 20대인 기자 역시 시에서 운영하는 '청년 심리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3회기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시와 제휴된 사설센터를 통해 상담을 받는 구조다. 예약은 별도의 인터넷 양식을 작성해 제출하거나 전화 통화로 가능했다. 상담 방식도 직접 찾아가는 대면 상담과 온라인 화상 채팅을 통한 비대면 방식 중 선택하면 된다.

상담, 정신적 문제 있는 사람이 가는 것 아닌가요?

상담 시작 전 간단한 서류와 비밀서약유지서를 작성해야 상담이 시작된다. /사진=전은지 기자
상담 시작 전 간단한 서류와 비밀서약유지서를 작성해야 상담이 시작된다. /사진=전은지 기자

기자는 사전 예약 후 직접 센터에 방문했다. 센터는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자리에 앉아 상담신청서와 비밀 유지 서약서를 작성한 후 본격적인 상담이 시작됐다.

상담을 진행한 A 상담사는 "큰 문제가 없더라도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상담을 신청할 때 '이런 문제도 상담이 가능할까' '내 문제는 너무 사소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기자의 생각을 꿰뚫는 말이었다. 실제로 심각한 정신적 문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상담이 가능했고 자기 이해, 심리 검사 등 비교적 가벼운 상담 프로그램도 존재했다.

첫 상담은 고민에 대해 털어놓는 것으로 진행됐다. 본인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와 연관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상담사는 기자의 말을 귀기울여 듣고 때때로 이해와 공감, 위로, 행동에 관한 해석 등 적절한 답을 건네줬다. 이후 남은 2회기와 3회기 상담에서는 다양한 심리검사와 해석, 이에 관한 대처법을 알아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오롯이 '나'를 알아가는 시간

상담실 내부의 모습. 여러 개의 개별 상담소가 있고 다대일 상담도 가능했다. /사진=전은지 기자
상담실 내부의 모습. 여러 개의 개별 상담소가 있고 다대일 상담도 가능했다. /사진=전은지 기자

기자는 상담사와 약 1시간 동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상담을 진행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나 자신'에 관해 돌아볼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고민과 과거 상처들에 대해 털어놓고 이에 대한 위로와 격려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상담을 마친 후에는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을 받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프로그램 진행이 끝난 후 "상담을 받는 사람이 많냐"고 물어봤다. 이에 A 상담사는 "하루에 2~3명씩 프로그램 참여자가 생긴다"며 수요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20~30대 상담자가 많아 프로그램 신청이 금방 끝나는 편"이라고 답했다.

흔히 '상담'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이 있다. 딱딱하고 어두운 분위기, 정신적으로 심한 증상을 앓아야 가는 곳, 비싼 금액과 고정적인 상담을 진행해야 하는 것 등이 그 예다.

기자 역시 직접 상담을 받아보며 그동안 생각해왔던 '편견' 대신 진정한 '상담의 세계'를 마주할 수 있었다. 상담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힘든 일이 있거나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싶을 때 주저없이 상담을 받아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