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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긴장 상태였던 국내 반도체업계에 희소식이 전해졌다.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 개선의 물꼬를 틔운 데다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도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규제 폐기 방침을 밝히면서다. 민관에서도 관세 완화를 위한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보이는 만큼 반도체기업의 숨통이 조금은 트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9일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1Gx8)의 지난달 평균 고정 거래 가격은 1.65달러로 전월보다 22.22% 올랐다. 지난해 11월(-20.59%) 급락한 뒤 12월부터 보합세를 이어오다가 5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낸드 가격도 지난 1월 이후 4개월 연속 오름세다. 같은 기간 범용 낸드(128Gb 16Gx8 MLC)의 평균 고정 거래 가격은 전달 대비 11.06% 상승한 2.79달러다.
D램 고정가격은 통상 1~3개월 뒤에 반영되기 때문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기업의 하반기 실적은 기대보다 더 큰 폭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당분간 D램·낸드 제품의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며 "현재로선 가격 하락 요인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통제 규정을 폐기한 점도 긍정적이다. 최근 미국 상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AI 규정을) 훨씬 단순하게 만들어 미국 혁신을 촉진하고 AI 우위를 확보할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의 AI 규정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관료적"이라고 비난했다.
AI 반도체 수출 통제 규정은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종료 직전 발표했다. 국가를 세 등급으로 분류해 엔비디아, AMD, 인텔 등이 제조한 고성능 AI칩을 허가 없이 수출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 20개국엔 무제한 수출이 허용됐으나, 중간 등급 국가 150개국에는 라이선스 및 수량 제한 등을 부과했다. 중국 등 적성국에는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오는 15일부터 발효 예정이었으나, 트럼프 정부의 결정으로 시행이 무산됐다.
국내 반도체기업에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규제 해제로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빅테크 기업의 수출이 자유로워지면 고대역포메모리(HBM)를 공급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기업들의 판매량 역시 함께 늘어날 수 있다.
관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한·미 통상협의'를 통해 관세 완화의 기틀을 마련한 데 이어 한국무역협회도 반도체 관세를 제외해달라는 공식의견서를 미국 상무부에 지난 7일 제출했다. 미국은 지난달 1일 수입 반도체와 의약품을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국가안보 위협 품목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하면서 이해관계자로부터 의견을 접수했다.
무역협회는 반도체 분야에 관해 "한국의 대미 수출은 주로 범용 메모리 반도체이며, 미국은 오히려 한국에 고부가가치 반도체 장비를 수출해 무역흑자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심하긴 이르다. 미국 정부는 여전히 반도체에 품목별 관세 부과 방안을 검토 중이고, 반도체 수출 규제 폐 역시 새로운 규정을 위한 초석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별 개별 협상을 거쳐 수출 허용·제한국을 결정할 방침인 만큼 오히려 더 까다로운 규제가 나올 수도 있다.
김 연구원은 "(트럼프 정부가) 잠시 규제를 완화했지만, 결국엔 반도체 품목 관세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며 "업계 전반에 충격을 준 다음에 관세 유예나 인하 등을 두고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