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난 20여년간 아시아권에서 꾸준히 사랑받은 청춘 로맨스를 리메이크한 한국판의 개봉이 이어지고 있다. '청설'이나 '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소녀' '말할 수 없는 비밀' 등의 영화들이 해당 작품들이다. 정지소와 차학연이 주연을 맡은 '태양의 노래'(감독 조영준) 역시 이 같은 흐름을 이어가는 작품이다. 동명 원작은 2007년에 개봉해 크게 사랑받았고 할리우드에서도 '미드나잇 선'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된 바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자외선에 노출되면 화상을 입고 DNA에 손상이 생기며 심하면 사망하게 되는 XP 증후군이라는 병을 앓는 미솔(정지소 분)이다. 미솔은 희귀병 때문에 평범한 생활을 전혀 하지 못하지만, 엄마(진경 분)와 아빠(정웅인 분), 친구 옥경(권한솔 분)에 둘러싸여 구김없이 살아가고 있다. 미솔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솔은 매일 집 앞에서 과일을 파는 과일 트럭 청년 민준(차학연 분)에게 반한다. 친구 옥경이 도와준다며 나섰지만, 도리어 옥경은 민준이 자신에게 반한 것 같다며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대낮에는 밖에 나가볼 수 없어 애만 태우던 미솔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한밤중 민준의 트럭이 집앞에 선 것. 미솔은 맨발로 뛰쳐나가 막 떠나던 트럭을 잡아 세우고, 사과를 산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된 두 사람은 매일 밤 만나 친해진다. 미솔은 민준에게 자신이 지은 노래들을 들려주고, 민준은 미솔을 자동차 극장에 데려가 자신이 엑스트라로 출연한 영화를 보여준다. 배우를 꿈꾸는 민준은 미솔의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미솔을 좋아하게 된다. 그러던 중 미솔과 민준은 함께 술을 마시며 데이트하다가 만취해 차 안에서 잠이 들어버리고 만다. 동틀 무렵에 깨어난 미솔은 혼비백산하고, 민준은 그런 미솔을 집에 데려다주면서 미솔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음악 영화'라는 애초의 콘셉트에 맞게 '태양의 후예'는 음악 감독으로 악뮤 이찬혁을 내세웠다. 이찬혁은 영화의 메인 테마곡인 '조각별'부터 '옐로우 데이'(Yellow Day) '이럴 때마다 상상해' '사랑을'까지 총 네 곡의 작사, 작곡을 맡았다. 여주인공 정지소는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프로젝트 그룹 WSG워너비로 활동하기도 했던 만큼, 가수급의 가창력을 자랑하며 이찬혁의 곡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무난하고 조금 심심한 느낌을 준다. 배경으로 택한 충청도는 여주인공 미솔이 앓고 있는 병을 보여주기에 그다지 효과적인 장소로 보이지 않는다. 병으로 인해 밤이 아니면 집 밖에 나올 수 없다는 핸디캡을 안고 있는 미솔이 가게 되는 곳이라고는 숲이나 바닷가, 시내 정도다. 민준을 만나 세상을 경험하고 설렘을 느끼는 미솔의 감정을 보여주기에는 소박하고 제한적이라 갑갑하게 느껴진다.
청춘 남녀의 사랑을 그려낸 정지소와 차학연의 모습에서는 풋풋한 매력이 돋보인다. 미솔의 엄마와 아빠를 연기한 진경, 정웅인 같은 배우들 역시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극을 받쳐준다. 민준의 직업을 배우로 설정한 것은 흥미로우나, 아주 잘 활용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원작의 서퍼라는 직업이 설정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기에는 더 나아보인다. 매력적인 리메이크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다. 아쉬운 부분들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배우들 본연의 매력과 무해한 청춘 멜로가 가진 힘이 없지는 않다. 배우들의 힘으로 인해 후반부 시퀀스에서는 눈물을 참을 수 없다. 러닝타임 108분. 오는 11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