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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란의 주요 핵시설을 정밀 타격하면서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란이 보복 수단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과 한국 산업계에도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23일 이란 국영 프레스TV 보도에 따르면 이란 의회는 미국의 폭격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했다. 이란의 최고국가안보회의(SNSC)가 최종 결정하면 해협 봉쇄가 현실화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적 해상 요충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산유국의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가 이곳을 지나며, 해협의 통제 여부는 세계 에너지 공급 안정성과 직결된다.
이스라엘이 지난 13일 이란에 대한 공습을 개시한 이후 페르시아만 일대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 미국 군사력을 활용해 이란의 핵 시설을 직접 타격하며 양국의 분쟁에 직접 개입했다.
양국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해협을 우회하는 선박이 생기기 시작했다. 호르무즈 해협 초입에 들어서던 초대형 유조선 2척이 미국의 이란 폭격 직후인 지난 22일 호르무즈 해협 초입에서 항로를 변경했다. 페르시아만 방향으로 가던 배들이 아라비아해 방향으로 튼 것이다. 이들 배는 호르무즈 해협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회항을 결단한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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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실제 봉쇄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전면적인 해협 봉쇄는 군사적·외교적 리스크가 지나치게 크다는 게 이유다.
군사적 측면에서 이란은 미국과의 무력 충돌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 바레인에는 미국 해군 제5함대가 상시 주둔하고 있다. 해협 차단이 실제로 단행될 경우 이란 정권이 감당하기 어려운 전면 충돌로 번질 수 있다.
경제적 자해 효과도 봉쇄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이란은 여전히 원유 수출에 국가 재정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국제 제재에도 중국 등을 향한 밀수출 또는 제3국 우회 수출로 제한적 수익을 유지하는 중이다.
해협 봉쇄가 미국에 끼치는 영향도 과거만 못하다. 과거 이란은 미국이 중동산 원유에 상당 부분 의존하던 시절 해협 차단을 거래 수단으로 활용했다. 현재 미국은 셰일 오일 생산 확대와 북미 에너지 수입 다변화를 통해 사실상 에너지 자립을 이뤘다.
해협 봉쇄 시 타격을 입는 국가는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주요 원유 수입국이다. 특히 중국은 이란의 우방국이기도 해 이란이 해협 봉쇄에 나설 경우 외교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도 있다.
해협 봉쇄가 현실화한다고 해도 당장 한국의 공급망 대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은 현재 200일분 이상의 원유 및 석유제품을 전략 비축 중이며 약 7개월 이상은 수급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국내 산업계는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며 수입선 확보, 해상 재고 조정, 도입선 다변화 등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과거에는 미국이 중동산 원유에 의존했기 때문에 이란이 해협을 막는 것이 미국에 큰 타격이었지만, 현재는 미국의 에너지 자립도가 높아져 영향이 제한적"이라며 "한국은 200일 치 이상의 석유 비축량을 보유하고 있어 일시적인 차질이 발생해도 심각한 석유 대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