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정권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이에 맞선 이야기를 담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회고록 '김대중 망명일기'가 출간됐다.
22일 서울 동교동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박명림 김대중도서관 관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필 수첩은 도서관에서도 존재조차 몰랐던 일"이라며 "이 사료는 유신 체제에서 겪었던 개인의 고통은 물론 한국 민주주의 쟁취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이 일기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이희호 여사 서거 후 3남 김홍걸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동교동 자택에서 여섯 권의 수첩을 발견했다. 이 수첩에는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되기 전, 1972년 8월 3일부터 1973년 5월 11일까지 김대중이 자필로 쓴 일기 223편이 기록돼 있었다.

김홍걸 이사장은 "귀중한 역사적 기록이 묻히지 않고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대통령 김대중의 진면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비상계엄과 유신의 의미에 대한 정확한 판단,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결단, 대한민국이 아닌 독재에 대한 일관된 반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박명림 도서관장에 따르면, 이 책은 김대중의 망명과 민주주의 투쟁이 미국 정부의 사실상 협조 속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박 정권에 대한 반대가 해외 교포들 사이에서 친북화 경향으로 흐르는 것을 단호히 경계한 점, 유신정권을 도와준 꼴이 된 북한에 대한 비판도 이 책에 명확하게 드러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0월 17일 유신 선포 당일 "나는 이 일기를 단장의 심정으로 쓴다. 그것은 오늘로 우리 조국의 민주주의가 형해마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박 정권의 비상계엄에 대해 얼마나 깊은 절망과 분노를 느꼈는지 보여준다.

일기 곳곳에는 김대중이 망명생활 과정에서 느꼈던 내면의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망명 중인 무력한 가장으로서의 처지,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가의 고뇌, 유신 독재의 압력에 흔들리는 동지들에 대한 허탈감, 국내 현실을 외면하는 국내 인사들에 대한 분노 등 인간적인 면모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