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심봉사는 자기 연민에, 심청이는 효에, 뺑덕어멈은 탐욕에 눈이 멀었죠.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눈이 멀어 있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립창극단 신작 '심청'의 극본과 연출을 맡은 요나 김은 "눈 먼 심봉사는 우리의 초상"이라며, 이 작품은 물리적 맹목(盲目)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정이라고 했다.
30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뜰아래연습장에서는 '심청' 공연을 앞두고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요나 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 유은선, 심청 역 김우정·김율희, 심봉사 역 김준수·유태평양이 참석했다.
'심청'은 판소리 '심청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주인공 심청을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와 힘을 가지지 못한 채 억압당했던 이 땅의 모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인물로 그려낸다.
국립창극단 전 단원을 포함해 약 160명이 출연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요나 김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연출가. 2017년 오페라 전문지 오펀벨트가 선정한 '올해의 연출가', 2020년 독일 예술상인 파우스트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지난해엔 국립오페라단 '탄호이저' 연출로 호평을 받았던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판소리 기반 작품에 처음으로 도전한다.

"심청이가 용왕과 결혼? 용궁 로맨스 없어"
요나 김은 '심청'이 원전과 다른 점에 대해 "'용궁 로맨스'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동화적인 장치를 써볼까 하는 유혹도 느꼈지만, 저는 용궁에 가본 적도 없고(웃음), 용왕과 결혼하는 이야기 등은 어린 소녀를 물에 빠트린 데 대한 죄책감에서 만들어낸 일종의 판타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사실 지금도 결말은 여러 버전으로 실험 중"이라며 "확실한 건, (심청이) 남성의 권력에 기대어 행복을 찾는 식의 결말은 아니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롭게 다가온 지점에 대해 김율희는 "원전 속 심청이는 모든 것을 수용하고 감내하는, 더없이 착한 인물로 그려진다"며 "하지만 이번 '심청'에서는 과연 왜 심청이 죽어야만 했는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무엇이었는지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심청 역으로 더블 캐스팅 된 김우정은 "심청이는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일 수 있다"며 "'착한 아이 컴플렉스'를 가진 소녀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심봉사 눈 뜨듯 저도 새로운 눈 뜨게 됐다"
김준수는 심봉사 역으로 출연하는 소감에 대해 "창극단에서 여러 작품을 해오면서도 유일하게 만나지 못했던 역할이 '심봉사'였다"며 "이번에 심봉사처럼 저도 새롭게 눈을 뜬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심봉사는 결국 눈을 뜨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을 것 같다"며 "이 작품을 통해 저도 심청가를 바라보는 시선과 해석에 새로운 눈을 뜨게 돼 큰 축복"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역할을 맡은 유태평양은 원전과 이번 작품 속 심봉사의 차이에 대해 "원전의 심봉사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딸바보'"라며 "반면 이번 작품에선 정반대다, 굉장히 무기력하고 딸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심봉사가 결국 딸을 죽음으로 내몬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해석을 하게 됐다"며 "관객 분들도 극을 보며 저마다 다른 해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청'은 오는 9월 3일부터 6일까지 나흘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