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통해 향후 4년 동안 미국산 에너지 1000억달러어치를 수입하기로 합의하면서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가 국내 에너지 산업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25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의 모습. /사진=뉴스1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통해 향후 4년 동안 미국산 에너지 1000억달러어치를 수입하기로 합의하면서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가 국내 에너지 산업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25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의 모습. /사진=뉴스1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통해 향후 4년 동안 원유·액화천연가스(LNG)·액화석유가스(LPG) 등 미국산 에너지 1000억달러(약 139조원)어치를 수입하기로 합의하면서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가 국내 에너지 산업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상이 국내 에너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경제성 논란이 컸던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가 협상 대상에서 제외된 점은 국익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향후 에너지 수입 가격에 대한 협상이 주요 과제로 남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31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4년 동안 미국산 에너지를 총 1000억달러 규모로 수입하기로 합의했다. 연간 평균 250억달러 규모로 지난해 미국산 에너지 수입액(232억달러)과 비교하면 연간 약 18억달러 증가한 수준이다.


품목별로는 지난해 원유 142억4880만달러, LNG 30억9213만달러, LPG 44억5802달러어치를 수입했는데 향후 LNG를 중심으로 전 품목에서 수입량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차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LNG 수입 국가 비중은 호주(25%), 카타르(19%), 미국(12%) 순이어서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여력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이번 에너지 수입 합의가 한국 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원유, LNG, LPG, 일부 석탄 등을 포함한 수입 약속이지만 통상적으로 수입해오던 규모와 큰 차이가 없다"며 "일부 중동산 에너지를 미국산으로 대체하는 수준이며 우리 경제 규모에서 충분히 감당 가능한 액수"라고 설명했다.

 이번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가 단순한 무역균형 조정 차원을 넘어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를 통한 에너지 안보 강화 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진은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한미 통상협의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구 부총리,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사진=뉴시스
이번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가 단순한 무역균형 조정 차원을 넘어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를 통한 에너지 안보 강화 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진은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한미 통상협의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구 부총리,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사진=뉴시스

업계는 이번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가 단순한 무역균형 조정 차원을 넘어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를 통한 에너지 안보 강화 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이번 협상으로 도입하게 될 미국산 LNG는 연간 약 440만t 규모로 최근 계약이 종료된 카타르산 장기 도입 물량(연 900만t)의 일부를 대체하는 수준"이라며 "미국산 LNG 수입 확대는 수입선 다변화라는 정부의 에너지 전략에도 부합하며 향후 중동 국가들과의 가격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산 에너지의 수송비와 운송 시간 등을 고려하면 민간 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산은 수입 과정에서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해야 해 중동산에 비해 수송비가 높고 운송 기간도 길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미국의 에너지 운반선은 규모가 커서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이 경우 중동에서 오는 것보다 운송 시간이 두 배 이상 길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운송비용을 포함해도 중동산보다 가격 경쟁력이 확보돼야 실익이 있다"며 "향후 가격 협상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업계는 정부가 운송비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정부는 '원유 도입처 다변화 지원제도'를 통해 미국산(배럴당 운송비 약 4달러)을 수입할 경우 중동산(약 2달러)과의 운송비 차액을 일부 보전해주고 있다. 연간 지원 규모는 약 2000억원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산 에너지 확대를 통해 수입선 다변화는 장기적으로 에너지 안보와 가격 협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만 단기적으로는 운송비 등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현재보다 실효성 있는 운송비 지원 확대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협상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역점 사업으로 꼽히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는 1300㎞에 달하는 가스관을 신설해야 하는 대규모 사업으로 본격적인 생산은 203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는 이번에 알래스카 프로젝트가 제외된 것은 국익을 지킨 성과로 평가하면서도 향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 이행 과정에서 추가 투자 압박이 있을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