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15세기 중국에서 시작된 양명학은 단순한 유학의 분파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 내면에서 출발해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는 실천 철학이었다. 저자 한정길 성균관대 연구교수는 '양명학'이 조선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변용되었으며,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폭넓게 탐색한다.
양명학은 '마음'을 철학의 중심에 둔다. 마음이 곧 이치이며, 누구나 마음을 닦으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급진적 사유는 기존의 위계적 질서와 권위주의를 정면으로 뒤흔들었다.
저자는 양명학의 핵심 개념인 양지(良知), 마음공부, 각민행도(覺民行道)를 통해 백성에게까지 도덕과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한 점에 주목한다.
양명학은 당시 주자학 중심의 질서 속에서 이단으로 몰렸으나, 동시에 조선 지식인들에겐 자유롭고 급진적인 사유의 통로였다. 이에 양명학의 주요 개념을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 정치적·사회적 맥락과 연결해 그 수용과 반발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린다.
예를 들어 이황과 그의 문인들이 양명학을 강하게 비판함으로써 조선에서의 확산을 막았으나, 반대로 정제두, 박은식, 정인보 같은 인물은 이를 새로운 경세사상의 원천으로 삼았다. 이런 흐름은 오늘날 우리가 신자유주의나 이성 중심주의의 한계를 진단할 때에도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책은 총 11장으로 짜였다. 조선 성리학의 심학화와 양명학의 전래, 실학과의 접점, 강화학파와 근대 지식인들의 사유까지 촘촘하게 아우른다.
특히 저자는 마음공부와 현실 개혁을 동시에 꿰뚫는 사유 구조를 부각시키며, 양명학이 개인의 도야를 넘어 사회 개혁의 철학으로 작동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양득중, 정약용, 홍대용, 이건방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며, 양명학을 통해 각자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에 어떤 방식으로 응답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양명학'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사유의 한국사' 시리즈 중 6번째 책이며 단편적 해석이 아니라 3년간의 집필과 학술적 검토를 거쳐 완성됐다. 신간 '양명학'은 철학에 관심 있는 독자뿐 아니라, 사상의 실천성과 현실 적용 가능성에 관심 있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유의미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 양명학/ 한정길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 3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