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마' 이해영 감독 / 넷플릭스 제공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제목에 대한 편견만으로 보려는 관객들에게 이 두 여성이 시원하게 한 방 먹인다'는 감상평이 너무 정확해서 놀랐어요."

이해영 감독은 첫 드라마 '애마' 공개 이후 쏟아진 호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평을 이같이 언급했다. '애마'는 1980년대 에로 영화를 대표하는 '애마부인'을 소재로, 야만의 시대와 맞짱 뜬 두 여성 배우의 이야기를 다룬 참신한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해영 감독은 작품 공개 후 대중의 반응을 접한 데 대해 "'올해 본 것 중에 제일 재밌었다, 넷플릭스에서 했던 것 중에 제일 재밌었다'는 그런 말들이 너무 감사했고 뜨겁게 와닿았다"며 기뻐했다.


지난 22일 6부작이 전편 공개된 넷플릭스 새 시리즈 '애마'는 1980년대 한국을 강타한 에로영화의 탄생 과정 속,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에 용감하게 맞짱 뜨는 톱스타 희란(이하늬 분)과 신인 배우 주애(방효린 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배우 이하늬와 방효린 진선규 조현철 등 배우들이 출연했으며, '천하장사 마돈나'(2006) '페스티발'(2010)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5) '독전'(2018) '유령'(2023) 등 작품을 선보인 이해영 감독의 첫 드라마 집필·연출작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애마'는 이해영 감독이 20년간 품어온 이야기다. 이하늬와 방효린이 말을 타고 광화문 도로 한복판을 역주행하는 장면은 드라마의 시그니처가 될 만큼, 남성 중심의 사회와 권력을 향해 정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두 여성 배우의 저항을 시각화하는 강렬한 연출을 보여줬다. 이해영 감독은 "그 장면을 하려고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했을 만큼, 이 장면이 지닌 상징성은 돋보였다. "처음 쓰고 연출하는 신인 작가, 신인 감독의 마음으로 돌아가 작업했다"는 이해영 감독을 만나 작품에 대한 비화를 더 들어봤다.

<【N인터뷰】 ②에 이어>


-진선규 배우가 야만스러운 제작자 역할을 탁월하게 소화했는데, 연기를 보면서 어땠는가.

▶진선규 배우는 현장에서 디렉션을 거의 안 준 배우였다. 그냥 구경하는 재미로 볼 정도였다.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 촬영 때는 스태프들이 모두 숨죽여 보다가 커트하자마자 모두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쳤다. 너무 잘해서 나도 오케이라고 말하지 않고 무전기에 대고 “"진선규 연기 X나 잘해"라며 극찬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 겪은 경험이었다. 저렇게 저질스러운 역할을 이렇게 훌륭하게 소화해 낼 수 있구나 싶어 감동이었다.

-어떤 장면이었나.

▶5부 마지막 장면에서 "미나는 너 때문에 죽은 거야"라고 희란이 말할 때 상욕을 하며 맞받아치는 연기 대결은 거의 한 호흡으로 쭉 찍었는데 그 연기를 지켜보던 모두가 압도됐다.

-현봉식 배우도 강렬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당시 초절정 미남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남궁원, 신성일 같은 배우들이다. 하지만 미남이 나오면 느끼해질 수 있었다. 필요한 건 더티 섹시함과 하찮음의 미학이었어서 그래서서 누구를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현봉식을 주연으로 하면 너무 더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주 더럽고 섹시하게 너무 잘해줬다.(웃음) 당시엔 현봉식이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획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후 'SNL' 등 여러 군데서 더티 섹시를 하더라.(웃음) 그에게서 불결한 섹시함을 읽은 게 나만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생각했다.(웃음)

-박해준 배우가 연기한 기자 캐릭터도 인상 깊었다.

▶관객들이 "박해준 배우가 험한 걸 삼켰다" "감독에게 무슨 협박을 받았냐"고 하더라.(웃음) 제안할 때 조심스러웠지만 제 느낌엔 흔쾌히 받았던 것 같다. 박해준 배우가 '애마'라는 이야기 자체를 재미있게 여겨준 것 같았다. 최근 연기했던 이미지와 달리 골 때리는 캐릭터를 맡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관객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나도 현장에서 놀랐다.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웃음) 물론 제가 가발 같은 건 씌우기도 했지만, 너무 멀쩡한 외모라 어떻게든 덜 멀쩡하게 보이도록 노력을 했다.(웃음)

-작품 속 수위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풀어갔나.

▶작품 공개 전에 예고편 나오고 했을 때 봤던 누리꾼 분들의 가장 많은 댓글은 '가슴 나와?' '어디까지 나와?' 였다. 댓글 창에 거의 수십 개씩 달려 있던 댓글이었는데 사실 너무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다. '애마부인'이라는 작품은 어쨌든 한국 최초의 성애 영화인 만큼 '어느 정도의 수위일까, 얼마큼 야할까' 당연히 중요하고 호기심이 가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분들에겐 '애마'가 수위가 높지 않다라고 느끼시는 분들이 계실 거다. '애마'의 수위가 어느 정도의 수위냐고 만약에 누가 제게 물어본다면 실제 영화 '애마부인' 정도다. 당시 엄격한 심의 규제 때문에 실제로 성적인 묘사가 불가능한 시대였다. 실제 노출을 안 하면서 은근히 묘사하라는 구중호 대사처럼, 직접적으로 노출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묘사해서 실제로 노출한 것과 진배없는 이 효과를 어떻게 잘 표현할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한 숙제였다. 그런 그런 전제하에 만들어진 게 '애마부인'이었기 때문에 실제 노출이 놀랍게도 없었다. 사람들 머릿속에 실제 '애마부인'이면 온통 가슴 투성이고 이럴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지금 보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 거다. 오히려 '애마'가 좀 더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노출의 기준을 어느 정도 할 것인가를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저희 기준은 실제 '애마 부인'보다 더 나아가면 이 이야기의 테마, 태도와 맞지 않다고 판단했고, 실제 '애마부인'의 노출 수위와 맞춰야 한다는 게 결론이었다.

-업계에서도 호평이 많았다. 감독이 관철시키고자 했던 바를 가장 잘 알아준 반응이 있었나.

▶감사하게도 모두 바랐던 점들을 잘 봐주셨다. 정준원 배우가 정확하게 봐줘서 약간 놀랐다. "제목에 대한 편견만으로 보려는 관객들에게 이 두 여성이 시원하게 한 방 먹인다"는 표현이었다. 의외였고 너무 고마웠다. 박소담 배우의 추천사도 뭉클했다. 여배우로서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에 공감을 많이 했던 것 같고, 마지막에 주애의 대사를 인용해 자신의 감정을 썼는데 뭉클한 느낌이더라.

-첫 드라마로 집필과 연출을 함께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어려웠다. 여섯 편짜리 시리즈를 혼자 쓰고 찍는 건 건강에 해롭더라.(웃음) 평소 좋은 걸 먹고 운동하며 루틴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2시간짜리만 계속 했었으니까 쓸 때도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 맞추는 게 가능했는데 6부작은 그렇지 않더라. 머릿속에 다 들어오지 않아서 어려웠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 연출도 마찬가지였다. 디테일한 연기를 잡아낼 때 머릿속에 다 들어오지 않더라. 그래서 훨씬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처음 쓰고 연출하는 신인 작가, 신인 감독의 마음으로 돌아가 작업했다.

-남성 감독으로서 여성 서사를 쓰는 과정에서 고민도 많았을 것이라 짐작되기도 한다.

▶'여성 서사를 하고 있어' 혹은 '해야겠어'라고 의식을 하거나 의도적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매번 내가 느낄 때 내 마음을 움직이거나 뭔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런 인물들을 다루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여성을 잘 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게 오만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고 외려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알아가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었다.

-'애마'처럼 20년을 품은 이야기가 또 있나. '애마'가 지금 현 시점에 공개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지.

▶그건 20년 후에야 말씀드리겠다.(웃음) '애마'는 지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 것 같다. 넷플릭스를 통해 만들어졌기에 가능한 표현 수위도 있었다. 공개 후 더 많은 사람에게 빠르게 보여줄 수 있었던 점도 그렇고, 복 받은 기획이었다고 느낀다.

-또 시리즈 도전 계획이 있나.

▶사실 '애마'를 할 때는 만들 때는 다음에 너무 영화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종종 들긴 했다.(웃음) 그런데 끝내고 나니까 영화를 끝내고 난 다음과 확연히 다른 어떤 성취감이 생기더라. 시리즈 다음에 시리즈를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언제든 콜 달라.(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