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 이봉주가 3일 경기 화성시 반월체육센터에서 런닝 자세를 시연하고 있다. 2025.9.3/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현역 은퇴 후 활발하게 활동하던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55)는 지난 2020년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허리 부상으로 정상적인 활동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2021년 이후 한 번씩 얼굴을 비춘 이봉주의 모습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등이 90도 가까이 굽어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거동이 불편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진단명은 근육 긴장 이상증.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근육이 꼬이거나 목이 뒤틀리면서 돌아가는 등 근육 이상이 나타나는 난치병이다. 의학계에서도 지금까지 증상의 원인이나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뉴스1과 만난 이봉주는 당시를 돌아보며 "어느 날 갑자기 자고 일어났는데 내 의지와 관계없이 배가 수축하다 팽창되기를 반복했다"면서 "점점 증상이 심해져 허리를 펼 수도 없었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유명하다는 병원은 다 가봤다. 기 치료도 받고 한방병원도 갔는데 효과가 없더라"면서 "2021년 6월엔 낭종 수술을 받았다. 70% 정도의 확률이 있다고 해서 걸어봤는데, 오히려 몸이 더 안 좋아졌다"고 회상했다.


세계를 정복했던 마라토너가, 제대로 거동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을 믿기 어려웠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걱정했고 구순이 가까운 노모는 매일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이봉주는 포기하지 않았다. 현역 시절 44번의 풀코스 도전 중 41번을 완주했던 엄청난 끈기를 지녔던 그답게, 병을 고칠 수 있을 때까지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의지였다.

이봉주와 아내 김미순 씨, 두 아들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 (이봉주 제공)

이봉주는 "수술을 받고도 상태가 악화하자 그 이후론 병원을 다시 가지 않고 재활 운동에만 매진했다"면서 "거의 3년 가까이 아침 8시에 나와 오후 6시까지, 쉬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그때의 고통을 생각하면 선수 생활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고된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아내 김미순 씨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증상이 악화한 이봉주는 혼자서는 50m를 걷는 것도 어려웠는데, 재활 운동을 하는 내내 아내가 '버팀목' 역할을 해줬다.

이봉주는 "아내가 정말 많이 고생했다. 아내의 헌신이 없었다면 그 시간을 버틸 수 없었을 거고 건강을 되찾지도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봉주의 굽은 등이 펴지는 데에는 꼬박 3년의 세월이 걸렸다. 작년부터 재활 운동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예전처럼 등을 꼿꼿이 펴고 걸을 수 있게 됐다.

이봉주는 "이제 예전의 생활을 찾아가고 있다. 건강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다"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이봉주와 어머니 공옥희 씨. (이봉주 제공)

이봉주는 다시 예전처럼 친근한 모습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학교나 기업에서 강연하거나, 방송 출연 제의가 오면 마다하지 않고 나가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충남 천안, 강원 정선 등 자신의 이름을 딴 마라톤 대회에도 현장에 나가 '페이스메이커'로 달리기도 한다. 다음 달 열리는 제4회 천안이봉주마라톤대회는 참가 신청을 받은 지 10여분 만에 5000명이 신청해 일찌감치 접수가 마감되기도 했다.

이봉주는 "대회장에 가보면 예전보다 연령층이 많이 낮아진 것을 느낀다. 러닝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 같아 즐겁다"면서 "나 역시 건강한 몸으로 많은 분들과 함께 뛰고 호흡하면서 더 건강해지고 있음을 느낀다"며 활짝 웃었다.

병세가 호전된 이후론 아침, 저녁으로 러닝을 하며 '몸 관리'에도 여념이 없다. 오랜 투병 기간이 있었고 체중도 늘어나면서 예전만큼의 모습을 보일 순 없지만, 5~10㎞를 '가볍게' 뛰며 몸을 예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그다.

이봉주는 "슬슬 걷듯이 뛰면 5㎞를 26분 정도에 뛴다. 예전과 비교하기는 어려운 기록"이라면서 "그래도 이제 건강해졌으니 몸 관리를 해 차츰 거리를 늘려갈 생각이다. 하프마라톤은 물론, 풀코스 마라톤도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전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 이봉주가 3일 경기 화성시 반월체육센터에서 런닝 착지법을 시연하고 있다. ⓒ News1 김영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