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값 상승으로 금 ETF가 주목받자 운용사들의 경쟁도 심화하는 모양새다. /사진=임한별 기자

최근 금값 상승으로 금 ETF(상장지수펀드)가 시장의 주목을 받으면서 운용사들의 '치킨 게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동일한 기초자산을 추종하는 금 ETF는 차별화할 포인트를 찾기 어려운 특성 탓에 보수율 인하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코스콤 ETF체크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국내 상장된 금 현물 ETF 중 최근 3개월 동안 가장 많은 자금이 유입된 상품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타이거)KRX금현물'이다. 해당 ETF는 최근 3개월 동안 2267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경쟁사 금 현물ETF인 한국투자신탁운용 'ACE(에이스)KRX금현물'은 같은 기간 1857억원이 유입됐다.


당초 국내 상장된 금 현물 ETF는 한투운용의 ACE금현물이 유일했다. 이 ETF는 2021년 12월15일에 상장됐으며 KRX금현물 지수를 추종한다.

최근 금값이 급등하며 투자 수요가 몰리자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금 현물 ETF 시장에 뛰어들며 지난 6월24일 ACE와 동일한 KRX금현물지수를 추종하는 TIGER금현물을 출시했다.

금 ETF는 기초자산이 모두 동일한 '금값'에 연동되기 때문에 차별화가 어렵다. 이에 후발주자인 미래에셋운용이 내놓은 카드는 '최저 보수'다. 당시 한투운용의 ACE금현물의 보수율은 0.5% 수준이었으나 미래에셋운용은 이에 비해 파격적으로 낮은 0.15%의 보수율을 내놨다.


TIGER금현물 ETF는 출시 한 달 만에 AUM(총자산) 1000억원을 돌파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장기 수익률이 거의 비슷하다는 금 현물 ETF의 특성상 투자자 입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은 낮은 보수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한투운용도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금현물 ETF 보수 인하에 나섰다. 한투운용은 지난 달 금현물ETF의 총보수를 0.5%에서 0.19%로 내렸다.

보수율 인하 후인 최근 한 달 동안 한투운용의 ACE금현물에는 1541억원의 자금이 유입되며 미래에셋자산운용(1328억원)을 앞질렀다.

시장에서는 이같은 보수율인하 경쟁이 또다시 운용사들의 치킨게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초 발발했던 운용사들의 미국지수 추종 ETF 보수율 인하 전쟁이 금 ETF에서도 동일한 흐름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 초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KB자산운용 등은 미국 대표지수 S&P500과 나스닥100을 추종하는 ETF의 보수율 인하 전쟁을 벌인 바 있다. 평균 0.01%~0.07% 수준이었던 보수율은 최저 0.0062%까지 낮아졌다.

이에 시장에서는 기초자산이 동일한 지수형 및 현물형 ETF에서 초저보수 경쟁이 일상화 되는 것 아니냐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수형과 현물형 ETF의 경우 주식형처럼 종목 구성이나 운용전략으로 성과를 달리하기 힘든 구조로 보수율 인하가 유일한 경쟁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금 ETF시장에서도 금현물 ETF는 물론 금 관련 ETF들이 잇달아 보수 인하에 나서며 경쟁이 점점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달 초 NH아문디자산운용의 HANARO(하나로)글로벌금채굴기업'은 당초 0.45%던 보수율을 0.15%로 인하하며 보수율을 인하했다.
ETF 보수인하 경쟁이 일상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챗GPT 생성이미지

이같은 잇따른 보수 인하는 장기적으로 시장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보수율 인하로 운용사 수익성이 악화며 비용절감을 위해 상품 개발, 마케팅 등이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의 선택지를 줄어들게 하는 결과를 만든다.

대형 운용사의 무분별한 보수 인하가 중소형사의 설 자리를 위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현물 ETF와 같이 시장에서 성과를 인정받은 중견사의 알짜 상품을 대형사가 유사하게 출시한 뒤 보수를 대폭 낮추는 식의 경쟁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 여력이 충분한 대형사는 수익성 악화를 감내하며 점유율 확대에 나설 수 있지만 중소형사는 동일한 수준의 보수 인하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이러한 구도는 중소형사의 퇴출을 부추기고 장기적으로 시장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ETF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자산운용사들의 첨예한 경쟁으로 인해 무리한 운용보수 인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그 결과 자산운용사들의 경영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운용사들은 각 사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전문 영역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전문 영역과 상관없이 유행을 추종하는 전략을 피하고 영업 비용을 지나치게 올려 투자자들을 유행하는 상품으로 일거에 유도하는 공격적인 마케팅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