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앞두고 일부 기업에서 자사주 소각 대신 EB발행으로 경영권 방어에 나서며 비난이 일고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정부와 여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포함한 '3차 상법 개정안' 논의를 본격화하면서, 상장사들이 앞다퉈 자사주를 활용한 교환사채(EB) 발행에 나서고 있다. 시장에선 이를 두고 자사주 소각 대신 우호세력에게 지분을 넘기기 위한 '편법'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자사주 대상 EB 발행 신고 건수는 2023년 25건, 2024년 28건에서 2025년 9월 중순까지 47건으로 올해 들어 급증했다. 규모로 봐도 지난해 전체 9863억원이었는데 올해 벌써 2조375억원을 기록했다.


EB는 일정 기간 후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이다. 이처럼 기업들이 EB발행을 늘리는 데는 현재 국회 논의 중인 3차 상법 개정과 관계가 깊다.

3차 개정안 핵심은 신규 취득분은 물론 기존 보유 자사주까지 소각 의무를 부과하는 데 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신규 취득 자사주는 즉시, 기존 보유분은 6개월 내 소각을 명시하고 있다. 김남근 의원안은 신규·기존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1년 내 소각을 요구하고 있다.

해당 법안대로 상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자사주를 활용한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단기적으로 자사주 소각에 막대한 비용처리로 연구개발과 같은 신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현재 자사주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자사주를 담보로 한 EB 발행을 강행하거나 검토하고 있다.

EB 발행으로 주가 폭락…소액주주 불만 터져

하지만 시장에선 반응은 싸늘하다. 최근 넥센, 대교, 덕성, 삼호개발, 비에이치, DB하이텍, 쿠쿠홀딩스 등이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EB 발행 결정을 공시했다. 이후 넥센의 주가는 5거래일 연속 하락했고, 대교와 덕성 등 다른 기업들 역시 주가가 하락했다.


특히 지주사가 EB 발행을 결정한 경우 주가 하락폭이 더욱 컸다. 쿠쿠홈시스·쿠쿠전자 등을 자회사로 보유한 쿠쿠홀딩스는 지난 16일 자사주 6.5%에 대한 EB 발행을 공시한 이후, 5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정부의 자본시장 개혁에 따라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모아졌던 만큼 실망감이 두드러진 것으로 풀이된다.

주가 하락이 계속되자 소액주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상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되자 자사주 소각을 피하려는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EB 발행에 서둘러 나서고 있다"며 "시장에선 이를 '꼼수'로 인식하며 주가도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상혁 의원 역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가 본격화되자 사전에 자사주의 마법을 펼치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금융 당국은 자사주 마법이 부르는 일반 주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행정적 조치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론이 나빠지자 EB 발행을 철회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KCC의 경우 지난달 24일 자사주 소각 대신 4300억원 규모의 EB 발행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주가가 크게 하락하고 주주들의 불만이 쏟아지자, 지난달 30일 EB발행을 전면 철회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열린 '대한민국 투자 써밋' 국가 IR 행사에서 "3차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이며, 저항이 없지는 않지만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실제 시행할 것"이라며 상법 개정안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하지만 당초 여당에서는 9월 내 3차 상법 처리도 거론돼왔으나 배임죄 폐지에 우선 무게가 실리며 3차 상법 처리는 미뤄지는 모습이다. 그 사이 EB 막차 발행 기업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