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부산시장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계엄 사과론'을 제기하면서 부산 정가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를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한 '노선투쟁'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최근 부산 동서대학교에서 열린 시사대담에 참석한 박형준 시장의 발언은 예상보다 수위가 높았다. 박 시장은 단순히 '유감'을 표명하는 수준을 넘어 당 차원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사과가 선행돼야 함을 역설했다.
박 시장은 이날 대담에서 "계엄 선포 과정의 법적·절차적 정당성을 따지기에 앞서 그 사태로 인해 우리 국민들이 받았을 엄청난 충격과 불안감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집권 여당으로서 국정 운영에 혼란을 초래하고 국민을 놀라게 한 점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 없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거나 '불가피했다'는 식의 논리는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박 시장은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듯 중도층 민심을 강조했다. 그는 "보수 지지층만 바라보고 가서는 결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합리적인 중도층과 수도권 유권자들이 등을 돌린 이유를 직시하고 우리가 먼저 고개를 숙여야만 다시 지지를 호소할 명분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이는 '선 사과, 후 수습'만이 떠나간 민심을 되돌릴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지도부에 강력히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키를 쥐고 있는 장동혁 당대표와 지도부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장 대표는 박 시장의 발언 이후에도 별다른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은 채 '단일대오'를 주문하고 있다.
지도부의 '버티기' 모드에 현장에서 표를 밭을 갈아야 하는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은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특히 여론에 민감한 수도권과 부산·경남(PK) 접전지 출마자들 사이에서는 박 시장의 발언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높다. 부산 지역의 한 시의원은 "박 시장이 총대를 메고 할 말을 했다는 분위기"라며 "지도부가 현장의 위기감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간 내년 선거는 필패"라고 우려를 표했다.
정치권에서는 박 시장의 이번 발언이 단순한 의견 제시를 넘어 내년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한 '노선 투쟁'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정치 평론가는 "박 시장은 3선 도전을 염두에 두고 '합리적 보수' 이미지를 굳히려는 전략"이라며 "장동혁 대표 체제가 계속해서 민심과 괴리된 강경 노선을 고집할 경우 지방선거 후보자들과 연대해 지도부를 압박하는 모양새가 연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계엄 논란을 어떻게 매듭짓느냐에 따라 국민의힘의 내년 지방선거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박 시장이 제기한 '사과론'이 당내 역학 구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