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KAL) 858기가 미얀마 벵골만 상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한국 승객 93명과 외국 승객 2명, 승무원 20명 등 115명은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38년이 흘렀다.
폭파인가, 사고인가… 북한 공작원 체포
사건 직후 수사당국은 일본인으로 위장한 남녀가 탑승했다는 첩보를 확보했다. 이는 곧 '하치야 신이치·마유미'라는 가명으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 김승일·김현희였다. 두 사람은 12월1일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됐다.
조사 과정에서 김승일은 독약을 삼켜 사망했고, 김현희는 생존했다. 정부는 두 사람이 김정일의 친필지령을 받고 기내에 설치한 시한폭탄과 술로 위장한 액체 폭발물(PLX)로 KAL 858기를 폭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북한의 88서울올림픽 방해 공작'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김현희는 1990년 3월27일 사형이 확정됐다. 하지만 확정 후 16일 만에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의해 사면됐다. 이후 김현희는 자신을 경호하던 전 안기부 요원과 결혼해 국내에 정착했다.
'무지개 공작' 뭐길래?
실종 직후 투입된 수색팀은 KAL 858기의 잔해는 물론 단 한 구의 유해도 찾지 못한 채 철수했다. 다만 수색에 나선 관련국들에 의해 양곤 동남쪽 해상에서 파손된 구명보트 등 부유물 7점이 발견돼 '비행 중 폭발' 가능성이 제기됐다.그 사이 사건은 제13대 대선을 앞둔 정치 상황과 맞물리며 '대선 개입을 위한 공작'이라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후 2007년 노무현 정권 당시 국정원 과거사위는 안기부가 여당 후보 노태우 지원을 위해 김현희의 국내 송환을 서둘렀다는 '무지개 공작'의 실체를 확인했다. 유족들은 "잔해를 못 찾은 게 아니라 안 찾은 것"이라며 진실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38년의 미스터리 풀리나?
사건은 2020년 1월 대구MBC 특별취재단의 보도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미얀마 안다만해역 수심 약 50m 해저에서 KAL 858기로 추정되는 동체를 발견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엔진 규격, 파손 형태, 파일론 구조 등을 종합해 동일 기종일 가능성을 높게 봤다. 이는 "공중 폭파로 산산이 조각나 흔적 없이 사라졌다"던 기존 정부 발표와는 상충하는 단서였다. 비교적 온전한 동체는 폭발 여부와 형태, 추락 과정 등 사건의 핵심 정보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수직 꼬리날개도 희미하게 포착됐는데 이곳엔 비행기 블랙박스(FDR)가 설치돼 있다. 블랙박스를 확보하면 조종 기록과 비행 데이터가 복원돼 사고의 실체에 한발 다가갈 수 있다. 폭파 전문가들은 동체 절단면의 화학 분석만으로도 폭약 성분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폭파냐, 사고냐'라는 근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유족들은 38년 동안 유해 한 점 찾지 못한 채 진실 규명을 요구해왔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가 언급되자 "고민해 보겠다'고 답했다. 국가 차원의 재조사 가능성이 직접 거론된 셈이다. 38년 동안 바다 밑에 잠겨 있던 진실이 인양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