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넘게 이어져 온 노동시장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중소기업 성장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해지며 경제 양극화가 진행됐고, 이러한 구조가 노동시장으로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모든 노동자에게 보편적인 근로조건이 적용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노동시장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기업 중심 성장의 그늘… 경제 양극화, 노동시장으로 확산
한국의 노동시장 양극화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 정책이 추진되면서 중소기업과의 생산성 격차가 벌어졌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용시장이 급격히 재편되면서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굳어졌다.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가 차원에서 수출 위주 성장 정책을 시행하면서 대기업 중심의 지원이 자연스럽게 확대됐다"며 "원청 격인 대기업은 고부가 사업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상대적으로 저부가 사업은 중소기업에 외주를 주면서 생산성과 처우 측면에서 격차가 벌어졌다"고 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경제적 격차가 노동시장에 반영되는 것을 막을 완충 장치도 미흡하다. 김성희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교수는 "한국과 비슷한 경제 구조를 갖춘 나라들의 경우 (대기업-중소기업 격차를) 완화하는 제도가 마련됐다"면서 "한국은 단체교섭 효력확장 제도, 산업별 노동조합 등 수평화 장치가 현실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우리나라는 기업별 노조 체제인 데다가 중소기업은 노조조차 없는 경우가 많아 이중구조가 심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중소기업(299명 이하) 사업장의 1인당 평균 노동생산성(연간 부가가치)은 1억3800만원이지만 대기업은 4억8590만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임금 차이도 상당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해 상반기 '300인 이상 사업체'(대기업) 월평균 임금 총액은 619만9000원으로 5.7% 인상됐지만 '300인 미만 사업체'(중소기업)는 2.7% 오른 373만9000원에 그쳤다.
보편적 근로조건 확장 필요… 노동시장 양극화 인식 전환 병행돼야
전문가들은 노동시장 양극화가 산업 생태계 단위의 문제인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표적으로 단체교섭 효력확장 제도에 준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단체교섭 효력확장은 원청 노조가 체결한 협약을 동일 산업 내 하청·중소기업에도 일정 부분 확장 적용하는 게 골자다. 다만 해당 제도는 산별 단위의 노조·교섭·협약이 수반될 때 가능해 기업별 노조 중심인 한국은 방식의 접근을 달리해야 한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노동시장 구조상 단체교섭 효력확장 제도를 당장 도입하기는 쉽지 않은 만큼 효력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며 "노조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근로조건의 틀을 넓혀가야 한다"고 말했다. "법 제도를 통해 변화를 모색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법은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어서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게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현행 효력확장 제도를 일부 개선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김 이사장은 "근로기준법을 보면 특정 지역에서 같은 업종의 노동자 중 상당수(약 3분의 2)가 단체 협약 적용을 받는 경우 정부 차원에서 협약 효력을 해당 지역 전체로 확장할 수 있는 '지역적 효력확장'이 있다"며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을 만드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근래 비정규직·이주노동자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며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굳이 (노동자) 3분의 2가 아니더라도 고용노동부 소속 노동위원회 등의 검토를 거쳐 효력확장이 가능하도록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하청 노조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단체교섭 창구 단일화 등을 중심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핵심이다. 최근 고용노동부도 원하청 교섭 시 교섭 창구 단일화 틀 안에서 하청 노조 교섭 단위를 분리하는 내용을 담은 노란봉투법(개정 노조법) 시행령을 발표한 바 있다.
근본적으로는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수반돼야 한다는 진단이다. 오 위원은 "북유럽 등 해외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공유됐다"며 "일본 역시 원·하청이 유사한 근로조건을 갖출 때 국가와 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했다. 이어 "오피니언 리더와 학계가 다른 나라 사례를 비교·분석하면서 노동시장 개선 방향을 지속해서 언급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