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가 3370만건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한 '셀프 조사' 논란에 대해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명령을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주무 부처 수장인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국정원은 증거물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운반만 도왔을 뿐"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30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연석 청문회(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연석청문회)에서는 쿠팡의 독단적인 조사 발표 배경을 두고 사측과 정부 간의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먼저 로저스 대표는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부 지시에 따라 자체 조사를 하고 발표했다는 주장이 유효한가"라고 묻자 "그렇다. 자체적으로 조사한 것이 아니고 정부의 지시에 따라 조사했다"고 답했다.
황 의원이 "어느 부처인가"라고 거듭 추궁하자 로저스 대표는 "해당 기관이 공개적으로 함께 했다고 인정한 것으로 안다"며 머뭇거리다 "국정원"이라고 지목했다. 이어 "국정원이 피의자(해커)에게 연락하라고 했다"며 "한국 법에 따라 요청을 따라야 한다고 이해했다"고 주장했다.
포렌식 조사와 관련해서도 "우리가 분석한 게 아니라 하드 드라이브에 대한 포렌식 이미지를 채취했다"며 "이것은 정보기관의 지시였고, 그 기관이 별도의 카피(복사본)를 만드는 것을 허락했다"고 말했다.
로저스 대표의 이 같은 주장이 나오자 배경훈 부총리는 즉각 강한 어조로 반박에 나섰다. 그는 "플랫폼 기업의 관할 주무 부처는 과기정통부이고, 과기정통부는 어떠한 지시도 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배 부총리는 국정원이 언급된 경위에 대해 "국정원은 노트북, 데스크톱, SSD 등 증거물을 이송하는 과정에서 유실이나 훼손, 그리고 국제적인 배후 세력에 활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송 과정을 '협조'하고 도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이 쿠팡에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며 "쿠팡이 증거 인멸을 시도하려다 이걸 이렇게 정부에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굉장히 괘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덧붙였다.
배 부총리는 사건의 본질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유출 결과는 민관합동조사단과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경찰청의 조사 결과를 듣고 발표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분석해야 할 데이터양이 엄청나게 많은데 쿠팡이 먼저 발표한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후에도 정부의 강경한 입장은 이어졌다. 류제명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이날 오후 질의 과정에서 "현재 범정부 TF를 비롯해 정부의 그 어떤 기관도 쿠팡에 자체 수사를 지시한 적 없다"고 재차 못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