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3개월째 취업 준비 중인 백유연(가명)씨는 경력직 위주의 채용 환경으로 지원 가능한 공고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은 머니S와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백씨. /사진=고현솔 기자

"신입으로 지원하더라도 업무 관련 경험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러면 저 같은 '진짜 신입'은 대체 어디서 경력을 채워야 하나요?"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에 매진하고 있는 백유연(가명·25)씨는 이같이 반문하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본격적으로 구직 시장에 뛰어든 지 1년이 넘었지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신입사원'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백씨가 마주한 취업의 문턱은 높았다.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백씨는 게임회사 또는 e스포츠 구단의 PD나 마케터를 목표로 1년 3개월째 취업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을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영상 편집 등 직무 관련 공부와 트렌드 분석을 이어가는 등 취업 준비에 할애하고 있다.

백씨는 다수의 채용이 사실상 경력직 위주로 진행되면서 실제로 지원할 수 있는 공고는 극히 드물었다고 했다. 그는 "최근 6개월 동안 신입 공고는 1~2건밖에 없었다"며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빛이 안보이는 동굴을 지나고 있는 느낌"이라고 호소했다.

현재 채용 시장에서는 신입 채용 축소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진학사 캐치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해당 회사의 채용 플랫폼에 올라온 대기업 정규직 신입 채용 공고는 2145건으로 전년 동기(3741건) 대비 43% 감소했다. 인턴·계약직을 포함한 전체 신입 채용 공고도 34% 줄었다.

신입 채용의 문턱, '경력'에서 막히다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사진=클립아트 코리아

백씨는 구직 과정에서 마주하는 가장 큰 장벽으로 '신입에게도 경력이나 경험을 요구하는 구조'를 꼽았다. 그는 "요즘 회사들은 신입을 뽑을 때도 경력이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하더라"며 "경력이 없는 지원자의 서류는 읽지도 않고 넘어가는 일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는 기업들의 채용 트렌드와도 일치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100인 이상 5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5 신규채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81.6%는 신규 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를 '직무 관련 업무 경험'으로 꼽았다. 관련 응답률은 2023년 58.4%에서 2024년 74.6%, 지난해 81.6%로 3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불투명한 채용 과정 역시 구직 의지를 꺾는 요인이다. 그는 "지난해 초 한 공고에 지원했는데 (회사에서) 메일을 읽지도 않았다"며 "해당 공고 마감 이후 똑같은 내용의 공고가 다시 올라와 허탈함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서류 열람 여부나 구체적인 탈락 사유를 알 수 없는 시스템이 취업 준비생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백씨는 '기회의 수' 자체가 줄어든 탓에 부모·선배 세대와 비교해 지금의 취업 환경이 한층 열악해졌음을 체감한다고 털어놨다. 공고 수는 줄어들며 경쟁이 치열해진 반면 기업이 기대하는 기준은 높아지면서 신입에게 허락된 문턱은 오히려 더 올라갔다는 설명이다.

그는 "예전에는 공고 자체가 많아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지금은 아무리 찾아봐도 지원할 수 있는 자리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AI 역량 등 새롭게 요구하는 기준이 높아져 도전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좁아지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위축되는 일상, 미뤄지는 '다음 스텝'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취업 준비가 길어지면서 삶의 모습도 달라졌다. 가장 먼저 체감한 변화는 경제적 부담이다. 백씨는 "처음에는 금방 취업할 수 있을 줄 알고 단기 아르바이트로 필요한 비용을 벌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취준 기간이 길어지면서 수입이 없는 상태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누적되는 경제적 부담은 사회적 관계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지인들과의 만남을 줄였고 '취업하고 만나자'며 헤어졌던 이들과는 소소한 연락을 나누는 것도 부담스러워졌다. 명절이나 연말 등 모임이 잦은 시기일수록 소외감은 더욱 깊어진다는 설명이다.

원래 계획했던 독립 등 인생의 다음 단계도 취업 이후로 미뤄진 상태다. 백씨는 "서른 살 전에는 독립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며 "일단 취업을 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 단추를 끼우지 못하니 그 다음 미래는 아예 생각조차 안 하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