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가 시행된 증권사 퇴직연금 시장이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시장 규모가 커지며 퇴직연금 사업자 간 서열 재편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액은 459조4625억원을 기록했다. 2024년 말 431조7000억원을 기록한 것 대비 6.4% 성장한 규모다.
이 중 증권사 퇴직연금 적립액은 약 119조7311억원을 차지했다. 2024년 말(100조5138억원 대비) 19.1% 성장했다. 전체 적립금 중 증권사 비중도 같은 기간 23.3%에서 26.1%로 확대됐다.
이는 실물이전 제도 도입 이후 은행권에서 증권사로 자금 이동이 본격화된 결과로 풀이된다. 증권사들이 상품 라인업 확대와 자산관리(WM) 인프라 강화를 앞세워 퇴직연금 사업에 적극 나서면서 '머니무브'가 가속화됐다.
시장 규모가 빠르게 확대되면서 퇴직연금 사업자 간 경쟁 구도도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전체 잔고(DB+DC+IRP) 기준으로는 미래에셋증권이 34조9244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삼성증권이 18조8656억원, 한국투자증권이 18조6384억원을 기록했다.
적립금 유입 속도와 증권사별 경쟁력이 갈리며 DB·DC·IRP 부문별로 주도 사업자도 분화되는 흐름이다. 단순한 규모 경쟁을 넘어 유형별 전문성과 사업 전략에 따른 서열이 재편되고 있다는 평가다.
DC(확정기여)형에서는 미래에셋증권의 독주가 두드러졌다. 2025년 3분기 기준 미래에셋증권의 DC형 적립금은 14조7497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 삼성증권(6조5951억)대비 두 배 이상 규모를 나타내며 압도적인 격차를 보였다.
IRP(개인형) 부문에서도 미래에셋증권은 선두를 차지했다. 미래에셋증권의 IRP 적립금은 14조3180억원을 기록하며 2위 삼성증권(8조1778억원), 3위 한국투자증권(6조4891억원)을 앞질렀다.
반면 DB 부문에서는 현대차증권이 15조4994억원의 적립금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2위 한국투자증권(7조2872억원), 3위 미래에셋증권(5조8567억원)순이었다.
개인이 직접 운용하는 DC와 IRP는 개인 선택 구조인 만큼 적립금 규모와 상품군, 자산관리(WM) 인프라 역량을 갖춘 증권사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반면,DB형은 기업이 운용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구조로 법인 영업력과 안정적인 운용, 관리 체계가 성패를 가른다는 분석이다.
다만 현대차증권의 DB 경쟁력은 계열사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한계도 지적된다. 현대차증권의 DB·DC 퇴직연금 적립금 가운데 자사 계열사 비중은 약 87%를 차지한다.
업계에서는 퇴직연금 시장이 앞으로도 구조적인 성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고령화에 따른 퇴직연금 자산 확대와 실물이전 제도 안착으로 자금 이동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증권사 역할과 존재감도 한층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장이 커질수록 사업자 간 경쟁 역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상품 라인업과 운용 성과, WM 경쟁력이 성패를 가르며 유형별 강점을 가진 증권사 중심의 서열화 흐름이 한층 뚜렷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행 퇴직연금제도는 퇴직연금 사업자 역할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라며 "사업자의 책임성과 운용 역량은 제도의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어 "퇴직연금 질적 성장을 위해서는 사업자 간 건전한 경쟁과 운용 성과, 서비스 품질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