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 중인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15일 1차 평가 결과를 통해 SK텔레콤, LG, 업스테이지 컨소시엄만 남기고 네이버클라우드와 NC AI 컨소시엄을 탈락시키면서다. 당초 정부는 4강 체제를 전제로 사업을 설계했지만 3강 구도로 급선회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과기정통부가 남은 한 자리를 두고 재공모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밝히면서 혼란은 더 커지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네이버클라우드에겐 '독자성' 부분을 지적하며 국가대표 AI의 자리를 허락치 않았고 NC AI에겐 성능 미달을 이유로 들었다. 충격적인 결과를 발표하면서 과기정통부는 남은 한 자리를 두고 패자부활전을 제안했다. 자칫 기회의 문이 열리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기업들이 받아들이는 현실은 딴판이다.


개인 개발자나 소규모 업체라면 '도전정신'으로 포장할 수 있지만 대기업이나 중견 IT 기업에겐 '독이 든 성배'다. 국책 사업에서 미끄러지는 것은 곧바로 '실패한 기업'이라는 낙인으로 이어진다. AI처럼 기술력과 신뢰도가 브랜드 가치에 직결되는 분야에서는 한 번의 탈락이 갖는 상징성이 가볍지 않다.

이미 탈락한 기업들이 난색을 표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미 1차 평가에서 "기준에 미달했다"는 공식 판단을 받은 상황에서 다시 도전하는 것은 성공하더라도 부담이 남고 탈락하면 치명상이 될 수 있다. 두 번 연속 정부 평가에서 떨어진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재공모를 통해 이전보다 진일보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느냐는 점이다. AI업계는 회의적으로 본다. 앞선 공모를 거치며 국내 주요 기업들은 보유한 기술력과 전략은 대부분 공개했다. 수개월에 걸친 준비 끝에 제출된 제안서들 가운데 우수한 아이디어와 현실적인 방안들은 1차 공모에서 상당 부분 소진됐다. 짧은 시간 안에 기존 제안보다 확연히 앞선 구상이 새롭게 등장하기는 쉽지 않다.


기존에 제출됐던 안을 일부 수정하거나 표현을 바꾸는 수준에 그칠 공산이 크고 이를 두고 '새로운 경쟁'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 차례 탈락했던 기업이 재공모를 통해 통과할 경우 이번에는 또 다른 형태의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처음에는 왜 떨어뜨렸느냐', '재도전에서 기준이 완화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애초에 네이버클라우드와 같은 대형 사업자에 대해 조건부 합격이나 보완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이 더 합리적이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1차 평가 발표 전 중국산 AI 논란이 커질 때라도 기준을 분명히 밝혔으면 갑자기 달라진 3강 구도에 대한 의구심도 적었을 것이다.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은 단기간 성과를 내기 어려운 사업인 만큼 기술력뿐 아니라 장기적인 투자 여력과 운영 역량이 필수적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일정 수준의 체급을 갖춘 기업들이 대거 이탈한 상태에서 사업이 과연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커진다. 현재까진 AI 스타트업 모티프테크놀로지스와 트릴리온랩스만 출사표를 냈다.

이에 재공모 논란은 '패자부활전'이 아니라 '패자낙인전'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형식적으로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실패의 기억을 되살리고 추가적인 리스크를 떠안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는 도전의 장려가 아니라 도전을 주저하게 만드는 구조다.

국책 사업은 무엇보다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이 중요하다. 평가 기준이 어떻게 적용되고 탈락 이후 절차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명확해야 기업들도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이번처럼 계획이 수시로 바뀌고 탈락 이후의 경로가 불투명하다면 향후 과기정통부가 추진하는 다른 국책 사업들 역시 신뢰를 얻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중요한 사업일수록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린 만큼 잡음이 나와선 안된다. 자칫 이번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이 시작부터 '기술 경쟁'이 아닌 '절차 논란'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그 부담은 정책을 믿고 뛰어든 기업들과 장기적인 국가 AI 경쟁력이 부담해야 될 수 있다.
양진원 IT·벤처팀 기자 /사진=머니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