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다정(가명·30)씨는 지난 연말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예상치 못한 이사를 겪으며 집을 구하는 일이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체감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조건을 따질수록 선택지는 사라졌고 남은 것은 '포기'뿐이었다. 그는 "채광을 위한 창문 말고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토로했다.
이사갈 집을 알아보면서 황씨가 부딪힌 것은 기본적인 조건을 맞추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현실이었다. 웹툰 작가로 일하고 있어 재택근무가 대부분인 황씨에게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업무 효율과 직결되는 채광과 컨디션, 1인 여성 가구로서 안전과 치안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원래 살고 있던 지역에서 이를 충족하려면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의 월세를 부담해야만 했다.
결국 그는 기존보다 일과 생활의 중심에서 한발 물러난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짐을 풀고 나니 기대했던 생활의 조건 상당수를 내려놓아야 했다는 걸 실감했다. 황씨는 "집을 보러 다닐수록 하나씩 내려놓게 됐다"며 "결국 동네를 옮겼음에도 창문(채광) 말고는 거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통이 예전만큼 편하지 않고 생활 동선도 길어졌다"며 "서울에 남아 있어야 하는데 선택지가 점점 좁아지는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주거 불안은 프리랜서라는 직업적 특징과 결합해 더욱 심화됐다. 직장인 친구들이 저금리 대출을 활용해 양호한 조건의 집을 구했지만 황씨는 번거로운 절차와 높은 금리 탓에 대출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월세나 대출 이자는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라 더욱 보수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밥은 굶더라도 길바닥에서 잘 수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황씨의 경험은 개인의 선택이나 특수한 상황에 그치지 않는다. 주거 조건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더 나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청년층 전반에서 반복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대 1인 가구 중 8.72%는 최저주거기준(주거면적 14㎡)에 미달하는 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최저주거기준 미달, 저소득(중위소득 50% 이하), 과도한 주거비 부담(월 소득 대비 주거비 30% 초과)이라는 3중고를 동시에 겪는 '복합위기 가구' 중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48.0%에 달한다. 이들의 79.5%는 고시원에 거주하며 주거권의 마지노선에 서 있다.
버는 돈보다 더 뛰는 집값… '빈곤 함정' 악순환
황씨는 빠르게 오르는 집값을 보며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어머니는 지금의 나보다도 적은 수입으로도 자가를 마련했지만 부동산 가격이 버는 돈보다 더 빠르게 뛰는 게 현실이라 자가 마련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러한 주거 불안은 황씨의 미래 계획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황씨는 "서울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버티고 있지만 계속 외곽으로 밀려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평생 월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노후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으로 이어진다"고 호소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인 가구의 소득 대비 높은 월세 부담이 저축을 가로막고 이것이 다시 일반적인 주거 유형으로의 진입을 차단하는 '빈곤 함정'(poverty trap)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거비 부담이 현재의 생활고를 넘어 노년층의 경제적 위기로까지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1인 가구를 '결혼 전 또는 인생 말기에 국한된 과도기적 형태'로 인식하는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구조적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1인 가구를 '전 생애에 걸쳐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 가구 형태'의 하나로 인식하고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 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