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좀 따분하시나요? 그렇다면 남도 끝자락, 강진으로 발걸음을 떼보세요. 강진에는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둘레길이 있습니다. 바로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산속 오솔길입니다. 그곳에서 빼어난 자태를 뽐내는 해송 사이로 바다를 바라보세요. 시간이 멈춰서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멈춰진 시간을 200년 뒤로 돌리면 바로 그 곳은 다산이 바다건너 흑산도에 유배된 중형(仲兄), 정약전을 그리워하면서 눈물 흘렸던 자리입니다.
백련사 오솔길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진만/사진=김옥분님
다산이 "하늘의 도움으로 얻은 문자들이다"라는 조선 철학서의 대표작인 주역사전(周易四箋)도 이 길에서 다듬어졌습니다. "결코 사람의 힘과 지혜로 도달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고 자평한 이 걸작을 먹고 자는 것까지 잊으면서 천착했던 곳이 여기, 강진입니다.
강진 주변의 걷고 싶은 길을 더 수소문해봅니다. 먼저 강진의 초입인 장흥 편백나무 숲길이 일품입니다. 편백은 침엽수 중에서 가장 많은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나무입니다. 수천그루의 아름드리 편백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의 상쾌함은 땅속 김장독에서 갓 꺼낸 푹 삭혀진 젓갈김치맛과 같습니다. 이 맛은 아는 사람만 알지요.
편백숲에서 억불산 꼭대기까지 3736미터의 '말레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대청 또는 마루를 일컫는 전라도 사투리 '말레'에서 비롯된 이 길은 정상까지 완만한 경사를 따라 흙 한 번 밟지 않고 오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경사가 완만하고 계단이 없으니 장애인도 휠체어를 타고 트레킹이 가능한 코스입니다.
장흥 천관산 기암(奇巖)/사진=김옥분님
억불산 편백나무숲길에서 피톤치드에 듬뿍 취한 후 천관산 억새를 만나보세요. 천관산은 700여 미터의 낮지 않은 산이지만 오르기 순한 산입니다. 가을이면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평원너머 그림 같은 다도해가 눈앞에 펼쳐지고 수많은 기암괴석과 기봉이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천자가 쓰는 면류관 같다 하여 '천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합니다. 천관산 정상에서는 남해의 다도해가 한눈에 펼쳐지고, 영암 월출산과 광주 무등산은 물론, 날씨가 맑은 날에는 제주도의 한라산까지 볼 수 있습니다.
장흥에서 강진으로 들어서면 대구면 청자도요지를 들려야 합니다.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9세기에서 14세기까지 고려청자를 제작하였던 지역으로, 우리나라 청자의 변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청자의 보고(寶庫)'입니다. 이곳 도요지 주변에는 고려청자를 재현하는 작업장이 세워져 청자박물관과 함께 우리나라 청자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습니다.
남미륵사 황동 아미타불상/사진=김옥분님
대구면에서 머지않은 곳에는 동양 최대인 36미터 황동 아미타불 불상이 있는 남미륵사가 있습니다. 미륵은 미래불(未來佛)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미륵불신앙이 희망의 신앙으로 민간에 폭넓게 전승되어 왔지요. 흘러가는 구름을 배경으로 사위를 압도하는 부처님을 우러러보고 있노라면 희망의 정토가 머지않은 듯 느껴집니다. 남미륵사에는 입구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실제 크기만큼의 대형 코끼리상과 수많은 석불들이 평소에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볼거리로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불교 미륵대종 총본산인 남미륵사는 1980년에 법흥 스님이 창건한 이후 30여 년 동안 꽃과 나무로 사찰 안팎을 가꾸어 현재의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경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밖에도 강진에는 곳곳에 볼거리가 풍성합니다. 영랑생가, 하멜기념관, 다산유적지, 무위사, 전라병영, 강진다원…. 이들은 단순한 관광자원이 아니라 교육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이요, 전통의 얼이 깃든 역사체험장이지요.
그래서 강진은 꼭 한번은 와서 머릿속에 담긴 무거운 것들을 비우고 바닷바람과 황토내음으로 채워 가볼만한 곳입니다.
☞ ${IL05}김옥분님은 강진의 자연과 역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강진군 군동초등학교 교감선생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