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장충단'에 대한 회고

한양도성 해설기 ⑮ / 광희문에서 숭례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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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순성(巡城)놀이라는 것이 있었다. 새벽에 도시락을 싸들고 5만9500척(尺)의 전구간을 돌아 저녁에 귀가했다. 도성의 안팎을 조망하는 것은 세사번뇌에 찌든 심신을 씻고 호연지기까지 길러주는 청량제의 구실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현재 서울은 도성을 따라 녹지대가 형성된 생태도시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복원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해설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수년간 한양도성을 해설한 필자가 생생하게 전하는 도성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성당길을 나와 동호로를 건너 서쪽으로 장충체육관을 지나 장충단공원에 들어간다. 수표교를 건너면 바로 앞에 장충단비가 보인다. 장충단비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순종이 세자시절에 앞면을, 충정공 민영환이 뒷면을 썼다. 일제강점기에 철거됐다가 광복 후 되찾아 신라호텔 영빈관 안에 세웠고 1969년 수표교 서쪽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고종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1895) 때 순국한 훈련대장 홍계훈과 궁내부대신 이경직 등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1900년 11월 남산 동쪽 자락 이곳에 사당을 지었다. 옛 남소영(南小營)터다. 이후 을미사변 당시 죽은 문관을 제사 지냈고 이듬해에는 을미사변 외에도 갑신정변, 임오군란 등 개항 이후 순국한 사람 모두를 제향하는 국립현충시설로 격상했다.

사당의 터를 이곳으로 정한 데는 다분히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다. 남산 서쪽 회현동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주둔했던 왜장대가 있었고 1900년 당시에는 일본공사관이 있었던 곳이며 일본인 마을이 형성될 정도로 일본의 영향이 큰 지역이었다. 따라서 고종은 일부러 왜색이 짙은 남산 일원을 택했던 것이다.

고종의 의도를 알아챈 일제는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 후 장충단 제향을 금지하고 1910년에는 장충단도 폐사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는 그 일원에 벚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장충단공원은 군사정권 아래 장충체육관·신라호텔·국립극장·국립국악원·자유총연맹·타워호텔 등이 들어서면서 처음의 면적 42만㎡에서 3만3000㎡로 크게 축소됐다.


/사진=뉴시스 조수정 기자
/사진=뉴시스 조수정 기자

◆목멱산의 첫 암문


신라호텔의 담장구실을 하는 성벽이 끝나는 지점에서 암문을 만난다. 목멱산 구간의 첫 암문이다. 암문을 지나면 도성 안쪽으로 여러 건물이 성곽길을 따라 차례로 나타난다. 도성의 성곽은 이 건물들의 담장으로 온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팔각정에 이르면 성곽과 성곽길 모두 끊어진다. 그 언덕에는 신당동 방면을 찍은 사진이 담긴 안내판이 서 있고 그곳이 서울시 선정 우수조망명소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고층건물이 조망을 가린다. 그나마 신당동 반대방향으로는 남산의 숲이 시원스레 펼쳐져 위안거리다.

동호로를 건너 이곳까지는 장충동2가와 신당동의 법정동(행정동으로는 다산동) 경계를 따라왔다. 성곽은 자취를 감췄지만 이 경계를 따라가면 골프연습장을 가로지른다. 이곳도 성곽은 지하에 묻혔을 것이다.

골프연습장 안으로 들어가면 ‘반얀트리클럽&스파서울’ 부지가 나온다. 한국이 낳은 명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타워호텔 건물이었지만 벽면을 유리로 새로 단장했다. 1969년 개관했던 이 호텔은 경영난으로 2007년 새한씨앤씨에 매각됐고 3년간의 리모델링 끝에 2010년 재개장했으나 다시 경영난을 겪어 2012년 6월 현대그룹의 현대L&R이 인수했다. 현재 이 호텔은 싱가포르 리조트기업인 반얀트리가 20년간 호텔의 운영권을 넘겨받아 운영 중이다.

동호로에서 자유센터까지 1㎞ 정도 이어진 성곽이 이 호텔 부지에서 끊어진 것으로 보아 1960년대 타워호텔을 지으면서 성곽을 훼손했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사적에 대한 보호정책이 허술했다. 타워호텔 건물 완공 전 발행된 서울시 지도를 보면 이 부근 성곽이 뚜렷하게 보인다.

◆역사 속 장충체육관

장충체육관은 2015년 1월17일 대대적인 개보수 후 재개장했다. 장충체육관을 바라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1960년대 대학농구경기를 보러 다녔던 즐거운 추억이 떠오르다가도 이곳에서 민주주의를 짓밟은 사건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신라호텔 정문 영빈관. /사진제공=허창무 한양도성 해설가
신라호텔 정문 영빈관. /사진제공=허창무 한양도성 해설가

이곳은 1955년 6월 육군체육관으로 출발했고 1959년 8월부터는 서울시가 운영을 맡았다. 그 후 1960년 3월 기공하고 1963년 2월 준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체육관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설계는 김정수가 맡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으로는 성취하기 어려웠던 철골트러스트 돔의 구조설계와 건축설계부분은 미국에서 귀국한 건축가 최종완이 맡았다. 시공은 삼부토건, 감리는 미국의 벡텔(Bechtel Corporation)사가 담당했다. 항간에 필리핀 건축가들이 참여했다는 설이 나돌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다만 미국 벡텔사의 아시아사무소가 필리핀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필리핀 사람들도 건설에 참여했다는 설은 설득력이 있다.

장충체육관은 세계에 내세울 만한 것이 별로 없던 시절 기적 같은 사건으로 우리의 긍지에 불을 지핀 곳이다. 1966년 6월25일 권투선수 김기수가 이탈리아의 미들급 세계챔피언 니노 벤베누티를 이기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챔피언이 탄생했으며 1967년 4월에는 김일이 프로레슬링 세계챔피언에 등극해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어두운 그림자가 곧 이 체육관을 덮었다. 1972년 12월23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가 제8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80년 8월27일에는 전두환 역시 똑같은 절차로 대통령에 선출됐다. 민주주의의 조종이 그렇게 울렸다. 그들만의 축제에 울려 퍼지는 축가 대신 많은 국민은 우울한 장송곡을 들으며 스산한 장의행렬을 멍청히 바라봐야 했다. 망령들이여! 이제는 이곳에 얼씬거리지 말라!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9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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