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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101. /사진=뉴시스 |
상품과 서비스의 대량 구매를 넘어 아예 스스로 제품 기획에 뛰어드는 신종소비자 ‘팬슈머’가 대세다. 이들은 신선한 아이디어를 공급하고 적극 지지하는 동시에 간섭과 견제를 하면서 제품과 서비스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대중이 직접 참여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기존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과 같은 맥락인 셈이다.
팬슈머의 개념은 제프 하우 MIT 미디어랩 객원연구원이 2010년 자신의 저서 ‘크라우드소싱’에서 이미 언급한 개념과 유사하다. 크라우드소싱은 기업활동의 전과정에 소비자와 대중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한 뒤 기업활동 능력이 향상되면 수익을 참여자와 공유하는 방법을 말한다. 다만 팬슈머는 금전적인 보상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감을 추구한다는 것이 크라우드소싱과의 차이다.
크라우드펀딩은 팬슈머의 하위개념으로 자금 모금에 초점을 맞춘다. 개인이나 기업, 단체가 시제품을 만들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 올리고 관련 상품에 대한 개발·생산비용을 조달하는 구조다. 생산자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수요를 예측해 재고 부담을 크게 줄이는 장점이 있다.
소비자도 합리적인 가격에 보상을 얻을 수 있으며 제품이 나의 투자로 인해 만들어 졌다는 일종의 성취감(바이미 신드롬) 때문에 크라우드펀딩에 투자한다.
◆성공이란 빛에 가려진 또 다른 모습
대중의 참여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크라우드펀딩포털 크라우드넷에 따르면 총 527개 크라우드펀딩회사가 최근 4년간 발행한 펀딩금액은 총 1081억원이다. 연도별로는 ▲2016년 174억원 ▲2017년 280억원 ▲2018년 303억원 등으로 매년 증가했다. 올들어선 11월 현재 324억원으로 이미 전년 총액을 넘어섰다.
성공사례도 눈에 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의 수입사는 개봉자금 1억5000만원을 크라우드펀딩으로 조달했고 영화가 흥행하면서 투자자에게 기본이율 10%에 추가이율 70%를 안겨줬다.
중국 가전업체 샤오미는 ‘미펀’이란 팬슈머를 앞세워 시장을 집어삼켰다. 미펀은 스스로 제품을 구입해 후기를 작성하는 한편 제품의 개선방향을 제시하고 마케팅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면서 샤오미를 지지한다.
하지만 팬슈머, 크라우드펀딩 등 대중의 참여가 긍정적인 결론만을 도출하지는 않는다. 대표적으로 최근 논란이 된 ‘프로듀스 투표 조작’ 사건을 들 수 있다. 케이블 음악채널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은 시청자가 직접 자신이 원하는 아이돌 후보에게 투표해 아이돌 멤버를 구성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듀스×101은 시청자의 참여로 아이돌그룹 멤버를 선출한다는 의미에서 ‘팬슈머’ 트렌드를 적절하게 활용한 것으로 호평 받았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의 PD와 CP(총괄프로듀서)가 지난 11월5일 투표시스템을 조작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팬슈머 기반 시스템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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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크라우드펀딩사이트 와디즈에서도 지속적인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와디즈에서 펀딩을 진행한 ‘다모칫솔’은 펀딩 종료를 하루 남기고 취소됐다. 미세모라는 특징을 앞세운 다모칫솔은 펀딩모집 4500명, 펀딩금액 1억4000만원을 모금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한 투자자에 의해 다모칫솔이 중국 전자상거래 사이트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이미 판매 중이란 사실이 발각되면서 펀딩이 취소됐다. 앞서 지난 10월 펀딩이 오픈된 저혈당밥솥 ‘다미쿡’도 이틀만에 펀딩모집 1200명, 1억7000만원 펀딩을 달성하는 등 높은 인기를 끌었지만 이미 중국 사이트 ‘타오바오’에서 판매 중인 제품으로 드러나 11월21일 펀딩이 취소됐다.
◆피해 느는데 ‘판’ 키우는 정부
이처럼 피해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의 파이 키우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지난달 1일 금융위원회는 국무회의를 열고 사모투자 재간접펀드의 투자 상한선도 폐지했다.
지금까지 와디즈 등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 1인당 최대 500만원까지 투자할 수 있었지만 이 조항을 폐지하면서 더 큰 투자가 가능해졌다. 정부는 민간투자의 비중을 높여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으로 흘러드는 자금을 활성화 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크라우드펀딩은 투자 대상이 대부분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이어서 투자 위험도가 매우 높은 축에 속한다. 크라우드펀딩만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된 기업도 상당하고 펀딩이 마무리 되면 없어지는 기업도 부지기수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크라우드펀딩 투자를 모집한 기업의 채권 부도율은 19.3%에 달한다. 정부의 방침은 이런 사업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업이 원활하게 자금을 조달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셈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대중에게 돌아간다. 크라우드펀딩의 경우 자체가 투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있다. 특히 펀딩의 대가로 제품을 받는 보상형 펀딩은 돈을 내고 물건을 받는다는 점에서 온라인 쇼핑과 비슷하지만 전자상거래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전자상거래법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으로 투자형태인 크라우드펀딩은 적용이 되지 않는 셈이다.
크라우드펀딩 업계 관계자는 “크라우드펀딩은 대중의 참여로 자금난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도전하기 어려운 색다른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서도 “팬슈머, 크라우드펀딩의 공통된 문제점은 대중으로부터 부여·위탁받은 권한과 재화 등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으로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과 보호규정 없이 신뢰로만 움직이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보호조치와는 별개로 업계도 펀딩업체 검증시스템을 강화하는 등의 자정 노력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