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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중개사가 허위·과장 매물을 광고하다가 적발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의 계도기간이 끝난 직후 아실이 조사한 서울시내 아파트 매매와 전·월세 매물은 일주일 만에 3분의 1가량 사라진 5만7447건을 기록했다. /사진=김노향 기자 |
# 닷새간의 추석 연휴가 끝난 10월6일 오전 서울 용산 주택가. 두 집 건너 한 집 꼴로 있는 공인중개사사무소 문에는 ‘급매’ ‘전세’ ‘월세’ 등의 매물을 알리는 광고물이 붙어 있다. 전세 매물은 상대적으로 적다. 스마트폰을 열어 네이버부동산과 직방을 확인했다. 네이버부동산에 등록된 용산구 아파트·오피스텔·빌라·재건축 전세 매물은 총 792개. 같은 조건으로 강남구에선 2296개가 나왔다. 직방 내 ‘지하철역 도보 15분 거리’ 기준으로 전세를 검색하니 ▲서울역 69개 ▲강남역 168개다. 공인중개사사무소로 들어가 직접 문의한 결과 최근 전세 수가 줄어든 건 사실이란 반응이다. 하지만 매물이 아예 없는 건 아닌 데다 전세가 부족한 건 최근 몇 년 동안 지속된 현상이라고 했다. A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최근엔 전세 재계약이 많아졌다. 신규계약을 찾는 손님은 자녀 진학에 맞춰 학교와 가까운 집으로 이사하거나 면적을 넓히는 경우다. 일주일에 1~2건씩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말 세입자 권리를 강화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시행 이후 전세 불안이 극도로 확산된 가운데 실제 매물이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아파트 실거래가 빅데이터분석 업체 ‘아실’에 따르면 정부의 7·10 부동산대책 이후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 수는 4만3354건에서 8642건으로 80.1% 급감했다. 공인중개사가 인터넷 플랫폼에 광고를 게재한 매물 가운데 동일 매물을 제외한 수치다.
전세매물 줄어든 이유, 임대차 2법 때문?
불과 석달 새 전세 매물이 5분의 1로 급감한 이유는 뭘까. 일각에선 집주인의 전세 기피현상과 갭투자(매매가-전세가 차액만 내고 세입자가 사는 집을 매수) 규제로 인한 매물 회수가 원인이라고 지목한다.하지만 9월21일 시행된 공인중개사법 역시 매물 감소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공인중개사가 허위·과장 매물을 광고하다가 적발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의 계도기간이 끝난 직후 아실이 조사한 서울시내 아파트 매매와 전·월세 매물은 일주일 만에 3분의 1가량 사라진 5만7447건을 기록했다. 집주인이 실제 의뢰하지 않은 허위매물이나 시세보다 낮은 미끼매물이 사라지자 일부 집주인이 호가를 올리는 현상도 나타났다.
전세 매물 감소 속도도 빨라졌다. 서울 아파트 전세매물은 9월14일부터 21일까지 일주일 동안 30.0% 감소한 9052건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는 전체 6864가구 가운데 전세 매물이 87건에서 49건으로 줄었다. 1226가구의 서대문구 북아현동 ‘힐스테이트 신촌’도 전세 매물이 149건에서 80건으로 감소했다.
개정 공인중개사법 계도기간이 시작된 8월에도 이런 움직임은 나타났다. 아실에 따르면 서울 전세 매물은 8월27일 기준 1만5828건으로 한달 전(3만8906건)의 40% 수준이었다. 9510가구 규모의 대단지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의 경우 7월 873건이던 전세 매물이 8월에 39건으로 급감했다. 95.6%의 매물이 사라진 건 대부분 허위·중복매물이란 게 업계의 추정이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허위매물 단속이 강화돼 매물을 비공개로 바꿨다가 다시 올리기 시작하는 부동산이 많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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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노향 기자 |
‘갭투자 규제’ 안 하면 깡통전세 비상
서울 강남권 부동산 중개업체 사이에선 정부가 실거주 목적이 아닌 경우 갭투자를 규제해 전세 매물이 실종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규제로 인해 전세 매물이 감소했다는 주장은 소수라는 반박 의견도 있다. 임재만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새로운 규제로 세입자를 내보내야 하는 집주인은 그동안 어디에 살고 있었냐”며 “자기 집이면 전세를 내놓을 것이고 전세로 살았어도 그 집이 다시 전세로 나올 것”이라고 꼬집었다.집값 상승 움직임이 제한되고 전셋값은 지속적으로 불안한 가운데 갭투자 규제가 약화될 경우 소위 ‘깡통전세’의 위험도 커진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홍기원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평택갑)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SGI서울보증’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 9월까지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대위변제 미회수금액은 7654억원에 달했다.
연도별 미회수금은 ▲2016년 147억원 ▲2017년 336억원 ▲2018년 1116억원 ▲2019년 3246억원 등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올 들어선 9월까지 2809억원이다. 같은 기간 경매 등의 법적 조치를 통해 회수된 금액은 350억원에 불과했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세입자나 집주인이 보험료를 내면 임대차계약 종료 후에 전세금이 미반환돼도 HUG 등이 대신 변제해주는 제도다. 이후 HUG 등이 임대인으로부터 변제금액을 회수해야 하는데 제때 회수하지 못해 미회수금액이 발생한다.
홍 의원은 “갭투자자가 집값 하락이나 전셋값 상승으로 깡통전세를 감당하지 못하게 돼 이런 사고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며 “집주인의 부채상환비율(DSR) 산정 시 전세금을 가계대출에 포함시켜 채무로 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