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가 신약개발 분야에 있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롤모델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대표가 에이비엘바이오 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장동규 기자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가 신약개발 분야에 있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롤모델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대표가 에이비엘바이오 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장동규 기자

" K-바이오 위상이요? 높아지긴 했지만 BTS(방탄소년단)급은 아니죠." 국내 바이오 산업의 2세대를 대표하는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이사(59)의 말이다. 그는 "K-바이오 1세대가 보여주지 못한 성과를 2세대가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3세대의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K-바이오와 에이비엘바이오 모두 변곡점에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대표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난 6월에만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와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USA) 두 개의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ASCO에선 맥킨지 심포지엄에 한국 기업 중 유일하게 패널로 초청받았다. 글로벌 무대에서 K-바이오 중심에 선 인물이다.


이 대표는 "ASCO를 비롯해 바이오USA 등의 콘퍼런스는 3년 만의 대면행사였다"며 "이런 바이오 행사의 꽃은 미팅이다. 이번 행사 기간에 하루에도 7~8개 기업들과 파이프라인과 관련된 1대 1 미팅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올해 말 바이오유럽(BIO-EU)뿐 아니라 내년 초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모건)까지 일정을 공유한 뒤 "(기술수출과 같은)좋은 소식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K-바이오의 중심에 선 이 대표가 있기까지 사노피와의 대형 기술수출이 있었다. 지난 1월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 최대 행사인 JP모건에서 에이비엘바이오는 프랑스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와 최대 10억6000만달러(약 1조3000억원)에 달하는 ABL301의 기술수출 빅딜을 체결했다. 이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일어난 기술수출 규모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이 계약으로 에이비엘바이오가 수령한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만 7500만달러(약 900억원)에 이른다. 이 대표는 "사노피 외에도 기술수출 논의를 한 기업들이 있었다"며 "계약 직전까지 다른 글로벌 기업들을 저울질한 결과 우리가 사노피를 선택했다"고 술회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2016년 6월 이상훈 대표가 창업한 두 번째 바이오벤처다. 앞서 그는 2009년 파멥신을 공동창업했으나 2013년 11월 스스로 내려왔다. 이후 한화케미칼 바이오사업부 총괄로 자리를 옮긴 뒤 에이비엘바이오를 창업했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 약력./그래픽=김영찬 기자
에이비엘바이오는 2016년 6월 이상훈 대표가 창업한 두 번째 바이오벤처다. 앞서 그는 2009년 파멥신을 공동창업했으나 2013년 11월 스스로 내려왔다. 이후 한화케미칼 바이오사업부 총괄로 자리를 옮긴 뒤 에이비엘바이오를 창업했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 약력./그래픽=김영찬 기자

잇따른 실패와 좌절… 새 창업에 가치 부여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2016년 6월 이 대표가 창업한 두 번째 바이오벤처다. 앞서 그는 2009년 파멥신을 공동창업했으나 2013년 11월 스스로 내려왔다. 이후 한화케미칼 바이오사업부 총괄로 자리를 옮겼지만 다시 쓴맛을 봤다.

"지옥문을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왔다고 해야 할까요. 인생의 후반기 좌절과 실패를 연거푸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 고민하게 됐고 의미 있는 비전 없이는 창업하지 말자고 다짐했죠."


그렇게 탄생한 게 에이비엘바이오다. 에이비엘은 'MEDICINE FOR A BETTER LIFE'(더 나은 삶을 위한 치료제) 슬로건에서 따왔다. 인생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그는 "에이비엘바이오를 창업할 때 가치가 있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회사가 진행하는 연구가 상장만을 목표로 하는 것인지 성장을 위한 것인지 답은 명확했다"며 "책임질 수 없는 상장은 필요 없다. B의 약자로 '베스트'(BEST)가 아닌 '베터'(BETTER)로 선택한 것도 '범피로드'(울퉁불퉁한 길)를 걸어온 삶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면역항암제,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등 이중항체를 기반으로 한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R&D) 기업이다.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하는 이 대표. /사진=장동규 기자
에이비엘바이오는 면역항암제,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등 이중항체를 기반으로 한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R&D) 기업이다.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하는 이 대표. /사진=장동규 기자

글로벌서 탐내는 에이비엘바이오의 이중항체

에이비엘바이오는 면역항암제,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등 이중항체를 기반으로 한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R&D) 기업이다. 기술적 맥락에서 이중항체는 두 개의 항원을 동시에 표적한다. 이 대표는 "이중항체는 기존 항암 치료제에 대한 내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며 "최근 임상에선 이중항체 치료제가 면역세포를 촉진해 항암 효과를 높인다는 결과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이비엘바이오의 이중항체 기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뇌혈관장벽(BBB)을 투과하는 그랩바디-B와 면역항암 이중항체 그랩바디-T, 그랩바디-I다. 그랩바디-I 외의 두 플랫폼은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이 중 그랩바디-B는 사노피의 빅딜을 이끌어낸 기술이다. 그 배경에는 에이비엘바이오가 높인 BBB(뇌혈관장벽) 투과율에 있다. 이 대표에 따르면 뇌는 난공불락의 영역이다. 기존 치료제로는 두꺼운 BBB에 막혀 약물이 뇌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랩바디-B는 기존 치료제보다 13배 높은 BBB 투과율을 보인다. 이 대표는 "BBB 투과율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고민했다"며 "약물을 전달하는 펌프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그랩바디-B를 설계했고 그 결과 사노피에 러브콜을 받아 빅딜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가 창립 6년만에 처음으로 흑자전환을 예고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기술특례 상장으로 코스닥에 입성한 바이오기업 중 흑자를 낸 최초의 사례가 된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벨리에 위치한 에이비엘바이오 본사에서 만난 이 대표가 회사의 비전을 소개하고 있다./사진=장동규 기자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가 창립 6년만에 처음으로 흑자전환을 예고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기술특례 상장으로 코스닥에 입성한 바이오기업 중 흑자를 낸 최초의 사례가 된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벨리에 위치한 에이비엘바이오 본사에서 만난 이 대표가 회사의 비전을 소개하고 있다./사진=장동규 기자

6년만에 흑자 기대… "상장 바이오기업 최초"

에이비엘바이오는 창립 6년만에 처음으로 흑자전환을 예고했다. 기술특례 상장으로 코스닥에 입성한 바이오기업 중 흑자를 낸 최초의 사례가 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에이비엘바이오가 기술수출로 확보한 현금은 업체와의 비공개 계약을 제외하고 988억원 규모다. 이중 올해 하반기 ABL301의 임상 1상 진입에 따른 마일스톤으로 4500만달러(약 540억원)를 수령할 것으로 기대된다. 마일스톤은 기술을 사들인 바이오 기업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임상적 성과를 달성할 때마다 개발사에 주는 일종의 로열티 개념이다.

이 같은 낭보에 대해 이 대표는 "단기적으로는 흑자 전환의 의미를 둬야 한다"면서도 "장기적으로 보면 기술수출이 아닌 우리 스스로 임상을 진행하는 단계까지 시야를 넓히는 계기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례로 다이이찌산쿄의 ADC(항체약물접합체) 유방암 치료제 엔허투를 들었다. 미국암학회에서 엔허투의 임상 데이터를 공개한 다이이찌산쿄는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빅딜을 맺었다. 이 대표는 "당시 계약금만 조 단위로 임상의 단계가 진행될수록 계약 조건과 계약금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에이비엘바이오의 목표를 제시했다. 이 대표는 "자체적으로 임상에 성공하고 10년 후에 상업화에 성공하는 회사로 거듭나고 싶다"며 "3세대 바이오 기업들이 더 의미 있는 성과를 내도록 신약개발 분야에 있어서 롤모델이 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