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이 독식했던 생수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농심의 폭리의혹이 불거지면서 제주도개발공사가 소송을 통해 농심의 사업권을 박탈한 것이 '물싸움'의 시작이다.
지금까지 페트병 생수시장에서 농심의 '제주삼다수'가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은 절반에 육박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사업권을 뺏긴 농심은 백두산 물인 '백산수'(白山水)로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다.
국내 최대 음료업체인 롯데칠성도 생수시장에 뛰어들었다. 곧 '백두산 하늘샘'이라는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농심이 뺏긴 제주삼다수는 제주도개발공사와 광동제약이 분리 판매한다. 지난해 기준 4300억원에 이르는 페트병 생수시장을 두고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삼다수 아성 꺾이나
제주도개발공사와 농심간에 체결된 판매협약이 12월14일부로 종료된다. 양측의 갈등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12월7일 제주도개발공사의 설치조례 중 일부 개정조례가 공포되면서 농심의 독점적 유통지위가 박탈됐다.
농심은 이에 불복해 개정조례 무효확인 소송 등 4건을 법원에 냈고 법정공방 끝에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에 따라 올해 12월14일에 판매협약을 종료하게 됐다.
앞서 농심은 제주도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수익을 이른바 '노예계약'으로 대신 챙겼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계약내용이 공개되지 않은데다 농심이 1988년 이래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독점공급을 하고 있다는 점이 비난의 도화선이 됐다.
가격 논란은 농심을 코너에 몰아넣었다. 농심은 제주도개발공사에 500ml와 2L 생수를 각각 200원과 460원에 공급받아 소비자가격을 이보다 2~3배 비싸게 책정했다. 농심 측의 물류비 부담이 크지 않다는 점도 비난을 키웠다. 제주도개발공사는 그동안 전국의 농심 물류센터까지 직접 배송해왔다.
제주도개발공사와 제주도 역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도내에서만 유통돼야 할 100억원대 도내 삼다수가 불법으로 유통된 사건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도내에서 구입하는 삼다수는 시중보다 26%가량 싸다는 것을 이용해 유통대리점이 밀반출한 것. 관리감독을 해야 할 공사와 제주도가 사실상 묵인·방조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독식시대 가고 완전경쟁 체제로
농심과 제주도개발공사 간의 밀월관계가 깨지면서 페트병 생수시장의 판도는 새롭게 재편될 예정이다. 당장 농심의 빈자리는 광동제약이 차지한다. 다만 기존처럼 '제주도개발공사=제주도, 농심=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형태의 사업권 대신 '제주도개발공사=대형마트+기업형 슈퍼마켓(SSM)+편의점, 광동제약=소매점' 형태로 공급방식이 변경된다.
광동제약은 '비타500'을 히트시킨 음료업계의 신흥강자다. 농심에 비해 유통망은 약하지만 성장세에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광동제약은 비타500을 비롯해 '옥수수수염차' 등으로 이미 상당한 유통 활로를 갖춰 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주삼다수와의 인연이 끊긴 농심은 새로운 브랜드로 시장 장악에 나선다. 2010년 중국 지린성에 공장을 설립하고 중국 내에서 판매해온 '백산수'를 다음달 국내에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백두산 화산 광천수라는 내용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삼다수와 정면대결을 펼친다.
농심과 제주도개발공사의 관계 정리를 가장 반기는 쪽은 업계 2위인 롯데칠성음료다. 독식구조가 깨지고 새로운 브랜드가 출시되기 전에 홍보 수혜를 입고 있어서다. '아이시스'라는 대표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롯데칠성은 '백두산 하늘샘'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내년 3월 내놓을 예정이다. 백두산 자연보호구역 내에서 채취한 생수로 규소 등 미네랄 함유량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마침 농심이 백두산 생수를 유통시키겠다고 선언한 터라 롯데칠성 입장에선 '백두산 대 한라산'의 물싸움 구도가 반갑기만 하다.
'석수'와 '퓨리스' 브랜드를 갖고 있는 하이트진로음료는 지난해 해양심층수 '아쿠아블루'에 이어 프리미엄 탄산수 '디아망' 등 2종을 리뉴얼해 출시하는 등 시장 다각화 전략을 꾀하고 있다. 이밖에 동원, 웅진식품, 풀무원, 해태음료, 한국코카콜라 등 한자릿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기업들도 혼돈스런 생수시장을 틈타 성장 기회를 엿보고 있다.
◆물싸움 3파전 양상
생수시장의 기업별 점유율은 공식적으로 발표된 내용이 없다. 한국샘물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생산기준 점유율은 제주삼다수가 25%, 롯데칠성음료의 아이시스가 15~20%를 차치하는 수준이다. 페트병과 대용량 용기(말통)를 합한 수치로 판매량과는 별개다.
통상적으로 업계가 페트병 시장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상대적으로 대용량 용기의 수익성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배달 방식으로 운영하다보니 운송비와 인건비 등에 많은 물류비용이 투입된다. 게다가 생수통을 회수해 재사용하기 위해 추가 비용도 감당해야 한다. 이 같은 이유로 현재 판매량은 대용량 용기 매출은 줄어들고 페트병 매출은 늘어나는 추세다. 업계에 따르면 수년 내 페트병 매출이 대용량 용기 매출을 넘어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업계가 주장하는 시장점유율은 각기 다르지만 페트병 시장에서 제주삼다수의 점유율을 50%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뒤를 이어 롯데칠성음료의 아이시스, 하이트진로음료의 '진로석수', 동원의 '미네마인' 등이 두자릿수 점유율을 기록하며 각축을 벌이고 있다.
판매 기준을 두고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12월 이후에는 제주삼다수를 공급하는 제주도개발공사의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소비자들이 공급자보다는 브랜드를 보고 선택한다는 점, 공사가 직접 도외지역의 공급을 주도한다는 점 등이 제주도개발공사를 시장 1위로 예측하는 근거다.
롯데칠성의 약진도 기대된다. 업계에서는 시장점유율 2위를 유지해온 롯데칠성에게 현재가 선두탈환의 기회라는데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굳건했던 공조관계가 깨지면서 삼다수의 입지가 흔들린 만큼 롯데칠성의 시장 선두를 위한 적극적인 마케팅이 예상된다.
하지만 농심의 반격을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독기를 품은 농심이 강력한 마케팅과 유통망을 통해 1위 탈환 의욕을 쉽게 꺾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농심 관계자는 "삼다수가 연간 19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글로벌 종합식품기업의 위상을 갖춰가고 있는 상황에서 생수시장은 포기할 수 없다"면서도 "아직 목표치를 말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기존에 유통하지 못했던 제주도까지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는 계획이어서 도내에서 독식해온 삼다수의 아성까지 위협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4000억원대 생수시장 새판 짠다
'물'의 전쟁
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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