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대세' 남자배우 열전
설 관객맞이에는 역시 한국영화가 제일 열심이다. 지난해 1억 관객 돌파라는 신기원을 이룩한 한국영화들은 올 초부터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다. 묵직한 대세 남자배우가 이끄는 화려한 라인업이 1주일 차이로 이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 액션 스타일리스트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이다. 10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첩보 액션 대작에다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전지현 등 규모부터 배우의 면면까지 단연 최고 우량아다.
제목처럼 배경은 여전히 냉전의 기운이 서린 도시 베를린. 북한의 '고스트' 첩보요원으로 활동하는 표종성을 중심으로 한국 국정원, 미국 CIA, 이스라엘 모사드, 아랍연맹까지 뒤엉킨 첩보 액션이 두뇌와 시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날 것 같은 액션이 절도있는 북한 격술, 몰아치는 총격전 등과 만나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언론시사회 직후부터 터져 나온 '한국의 본 시리즈'란 평가가 결코 '오버스럽지' 않다. 내내 맹활약한 '하대세' 하정우는 한국산 첩보물의 액션 히어로로도 합격점을 받았다. 배우들간 앙상블도 좋다. 2편을 기약할 만하다.
믿고 보는 배우 김윤석은 임순례 감독의 신작 <남쪽으로 튀어>로 돌아온다. <공중그네>로 친숙한 오쿠타 히데오의 동명 원작을 스크린에 옮긴 이 작품에서 김윤석은 '안 할 수 있는 자유'를 부르짖는 괴짜 중년 영화감독 최해갑 역을 맡았다.
전기요금에 붙어 나오는 TV수신료와 의무적으로 부과되는 국민연금을 거부하는 뼛속부터 반골 아저씨의 모습이 능청스런 김윤석과 어우러져 묘한 쾌감을 자아낸다. 사사건건 반기를 들다 그냥 남쪽 섬을 향해 튀고 마는 일가족의 모습도 마찬가지.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힐링' 영화로 한몫 단단히 할 것으로 보인다. 무려 15년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오연수가 왕년의 '혁명 마돈나'로 분한 모습도 이채롭다.
일찌감치 개봉한 류승룡의 <7번방의 선물>(감독 이환경)도 흥행 분위기를 타고 설 영화 대전에 합류한다. 지난해 <내 아내의 모든 것>과 <광해, 왕이 된 남자>로 대세 조연임을 알렸던 류승룡은 영화의 흥행과 함께 당당히 원톱 배우로 자리매김할 기세다.
<7번방의 선물>은 깜찍한 딸 예승이를 끔찍이 아끼는 바보 아빠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며 벌어지는 이야기에 웃음과 눈물을 버무렸다. 김윤진 주연의 <하모니>와 숀 펜의 <아이 엠 샘>을 합친 듯한 이야기에 코믹 양념을 세게 치고 감동 판타지로 버무렸다. 그리고 류승룡의 능청스런 연기와 아역 갈소현의 깜찍함으로 빈자리를 메웠다.
외화도 남풍(男風)에 가세했다. 브루스 윌리스의 액션 블록버스터 <다이하드>다. 존 맥클레인 형사와 테러범의 대결을 담은 1편이 1988년 처음 등장한 이래 25년만에 5편에 이르렀다. 이번 <다이하드:굿데이 투다이>에선 모스크바로 활동 무대를 넓혀 국제 테러조직과 한판 대결을 벌인다. 나이를 먹지 않는 듯 한 맥클레인 형사가 아들과 함께 종횡무진 시원한 액션을 선보일 예정. 단순하고 화끈하며 친숙한 '다이하드'식 액션이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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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가족이 함께 보는 애니메이션 '풍성'
남자배우 열풍에도 굴하지 않고 대거 설 관객을 맞으러 나선 작품들이 있다. 다름아닌 애니메이션이다. 한국, 미국, 일본 등 국적도 다양한 각양각색 애니메이션들이 설과 함께 겨울방학을 보내는 어린이와 학생들을 노리고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대통령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은 '뽀통령' 뽀로로의 첫 극장 데뷔작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이다. 슈퍼썰매 대회에 출전한 뽀로로와 친구들의 좌충우돌 도전기를 속도감 있게 담아냈다. 미취학 아동들로 이뤄진 지지기반이 워낙 단단한 데다 어린이 눈높이에 딱 맞는 속도감 넘치는 레이싱이 TV판과는 차별화된 볼거리를 선사한다는 평가. TV 애니메이션에서 출발한 극장판이 <마당을 나온 암탉>에 이어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다.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일본 판타지 애니메이션 <부도리의 꿈> 또한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은하철도 999>의 모티프가 된 베스트셀러의 원작자인 일본의 전설적 동화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겼다. 애니메이션 거장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이 연출을 맡아 위기에 빠진 아름다운 숲을 구하기 위해 나선 고양이 부도리의 모험을 담는다. 소박하고도 건강한 숲속에서의 삶, 배려심 넘치는 고양이의 모습이 사람들에게도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전체적으로는 으스스하고도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강세다. 한밤중이면 벽장 문을 열고 슬그머니 나타나는 사랑스런 괴물들의 이야기를 그렸던 픽사의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가 12년만에 3D로 관객을 만난다. 제목은 비슷하지만 앞서 개봉한 <몬스터 호텔>은 드라큘라, 늑대인간, 미이라, 프랑켄슈타인이 모인 인간 출입금지 구역 몬스터 호텔에 초대받지 않은 소년이 나타나며 벌어진 소동을 담은 작품이다. 유령을 보는 소년 노만의 마을 구하기 도전을 담은 <파라노만>도 있다. 스톱모션으로 완성한 개성 넘치는 스타일과 남다른 메시지가 눈길을 끈다.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애니메이션 <눈의 여왕>도 개봉한다. 이밖에 <'날아라! 호빵맨 극장판:구하라! 코코링과 기적의 별>은 호빵맨을 사랑하는 어린 관객과 골수팬들에게 어필할 전망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