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의 위기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조선 빅3’라고 불리는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수주소식이 속속 들린다. 업계에서는 조선업이 회복국면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분석도 조심스레 내놓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직 시장활성화를 낙관하기에는 이르다고 관측한다.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조선분야에서 1위를 지키고는 있지만 글로벌 조선업계가 여전히 불황 상황인 것은 변함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침체기를 버텨내면서 바닥을 다지고 업황이 회복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마수걸이 해양플랜트 수주가 불러온 기대감

지난 6월30일 삼성중공업은 노르웨이 스타토일사로부터 원유생산설비인 해상플랫폼 2기를 1조1786억원에 수주했다. 올 들어 처음 수주한 해양플랜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어 7월1일에는 쉘사로부터 부유식액화천연가스설비(FLNG) 3척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기대감을 더 키웠다. 이 계약의 수주규모는 5조2724억원으로 올 상반기 삼성중공업이 수주한 전체 수주금액을 상회한다. 하반기에 접어든지 단 하루 만에 상반기 실적을 상회한 것으로 상선 대비 해양플랜트의 고부가가치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삼성중공업이 쉘사로부터 수주한 FLNG. /사진제공=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이 쉘사로부터 수주한 FLNG. /사진제공=삼성중공업

게다가 삼성중공업이 이번에 수주한 계약 금액은 FLNG 3척의 선체 부분 제작비만 산정한 것으로 상부 플랜트 설비를 비롯한 전체 공사 금액은 더 커질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상부 플랜트 건조와 기본설계를 모두 포함할 경우 수주액이 적어도 7조원은 넘어설 것으로 본다.
사실 업계를 통틀어 삼성중공업의 이번 수주 건은 금액도 금액이지만 올해 ‘마수걸이 해양플랜트 수주’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된 저유가 기조로 인해 올 들어 지금까지 해양플랜트 수주는 단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국제유가가 최소 배럴당 80달러 수준이 돼야 해양플랜트 발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60달러 수준(6월29일 브랜트유 기준 62.0달러)에서 해양플랜트 발주가 연이어 나온 것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 중 1건 혹은 2건의 해양플랜트가 추가 발주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반기 발주가 예정돼 있는 해양플랜트는 이탈리아 ENI사의 모잠비크 FLNG, 태국 우본 원유생산 플랫폼 사업, 나이지리아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 등이다.

지난달 2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앞줄 오른쪽), 쇠렌 스코우 머스크 라인 사장(앞줄 왼쪽) 및 양사 관계자들이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 계약서 서명을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대우조선해양
지난달 2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앞줄 오른쪽), 쇠렌 스코우 머스크 라인 사장(앞줄 왼쪽) 및 양사 관계자들이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 계약서 서명을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대우조선해양

◆‘체질 개선’ 통해 불황 탈출 모색

다만 업계는 삼성중공업의 이번 해양플랜트 수주만으로 조선업의 회복을 낙관하기에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해양플랜트 발주가 시작됐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지만 조선3사의 수주목표치를 모두 채울 만큼의 수주량이 나올리는 만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조선3사는 과도하게 해양플랜트에 집중하던 사업 방향을 상선분야로 돌리는 등 체질개선에 나섰다. 언제가 될지 모를 유가상승을 단순히 기다리는 것보다는 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수주 비중을 높어야 현재의 불황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의견이 주류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최근 기자간담회 내용도 이를 반영한다. 정 사장은 지난 6월29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55%에 달하는 해양매출 비중은 과도하다”며 “가장 효율적인 매출구조는 해양 40%, 상선 50%, 그리고 특수선 10%”라고 말했다.

실제 그동안 글로벌 조선업계의 불황 속에서 한국 조선업체들은 고부가가치선박 수주로 명맥을 이어왔다. 전세계적인 발주 가뭄 속에서도 한국이 상대적 강세를 보이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VLCC(초대형 유조선), LNG선은 올 들어서도 발주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현대중공업은 노르웨이 선사와 LNGFSRU(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저장·재기화 설비) 1척 건조 계약을 맺었고, 대우조선해양은 AP몰러 머스크로부터 18억달러(1조9800억원) 규모의 대형 컨테이너선 11척 수주계약을 따냈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선사와 3700억원 규모의 셔틀탱커 3척 계약을 체결했다.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LNG선 분야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다수의 특허를 통한 원가경쟁력으로 경쟁사들을 앞서고 있다. 이 회사는 LNG선 연간 건조능력을 기존 15척에서 올해 30척까지 확대하고 총 20척 이상을 수주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대우조선해양의 LNG선 점유율은 최소 60%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중공업도 공정 지연 등 위험성이 큰 해양플랜트보다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공략에 집중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발주가 많았던 LNG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중심으로 영업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LPG(액화석유가스)선도 주력 선종으로 정하고 역량을 투입할 방침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7월 세계 최초로 셰일가스 부산물로 나오는 에탄올을 운반하기 위한 초대형 에탄운반선(VLEC) 6척을 수주하기도 했다.

한편 조선3사는 각각 사업 정리, 인력 구조조정 등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의 불황을 버텨내고 언젠가 다가올 호황기에 더욱 진일보하기 위한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9월 권오갑 사장 취임 이후 위기경영을 선언하고 인력 구조조정과 조직 개편을 계속 해왔다. 임원 30%를 정리했고, 1500여명의 직원들을 명예퇴직시켰다. 성과주의 연봉제를 도입하고 현대중공업·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등 계열 3사의 영업조직을 통합하는 등 사업부서 통폐합을 단행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정 사장 취임 후 논란이 된 STX프랑스의 인수추진을 잠정 중단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데 이어 연수원과 퍼블릭 골프장을 운영하는 자회사 에프엘씨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조선·해양플랜트를 제외한 비핵심자산을 정리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외에도 정 사장은 풍력발전 자회사인 드윈드에 대한 매각방침도 공식화했다.

삼성중공업 또한 지난해 500여명의 인적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업계에서는 올해도 희망퇴직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이 꾸준히 진행될 것으로 관측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