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낮 지하철 안 경로석 자리. 두 노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할매(65): “일을 하고 싶은데 당최 일할 곳이 없어요. 시키면 뭐든 잘할 수 있는데 이놈의 나이 때문에 일자리를 안 준단 말이에요.”
박할배(70): “(고개를 끄덕이며) 펄펄 날아다니는 젊은이들도 일자리를 못 찾는다는데 어쩌겠어요.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아파트경비원, 관리인, 폐지 줍는 일 뿐인데…. 자식들 눈치도 보이고 용돈벌이라도 할 겸 뭐라도 슬슬 알아봐야겠어요.”
김할매: “저 역시 일평생 가정주부로만 살아서 할 만한 일이 없더라고요. 집 근처에서 청소원 모집 중이라는 광고를 보긴 했는데…. 어찌됐든 우리 빨리 일자리 잡아서 다신 대낮에 지하철 안에서 마주치지 말자고요.”

/자료제공=CJ대한통운
/자료제공=CJ대한통운

바야흐로 100세시대다. 과연 “나는 몇살까지 일하며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가정과 사회에서 퇴직 후 다시 홀로서기에 나선 5070세대들은 이 막연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녹록지 않은 현실과 마주한다. 취업시장에서 나이 든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일쑤. 경력도, 체력도 모두 반토막 났다고 생각하는 편견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찬찬히 살펴보면 오히려 나이 덕분에 빛나는 직업도 많다. 기업에서도 이들을 위한 재취업에 하나 둘 나서는 추세다.

◆ 택배부터 시니어 카페까지


부산시 동래구에 사는 손모씨(71)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후 3년 정도를 집에서 보냈다. 쉬다 보니 건강이 안 좋아졌고 이내 퇴직금도 바닥났다. 자식이 있지만 손 벌리기가 미안했다. 그러다 실버택배 일을 시작하게 됐다.

손씨는 “물건을 기다리다가 받은 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수입이 생긴 것도 좋지만 아침마다 출근할 수 있는 직장과 동료가 있어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웃었다. 손씨는 건강이 받쳐줄 때까지 이 일을 할 생각이다.

손씨가 아침마다 출근하는 직장은 종합물류업체인 CJ대한통운이다. 이 회사는 서울·부산 등 32개 시·구에서 60개의 실버택배 거점을 운영 중이며 현재 470여명의 시니어 인력이 배송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내년까지 시니어일자리 1000개 창출을 목표로 전국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시니어인력들은 1개 거점에 7~8명이 근무한다. 특히 연로한 시니어들이 신체적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루 4시간씩 교대로 근무한다. 배송거점 인근 근거리지역에서 하루에 1인당 50~60개의 택배를 배송하고 물량에 따라 월 50만~150만원의 소득을 얻는다.

배송수단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키지 않는 친환경 전동자전거와 ‘스마트 카트’, 전동손수레 등이 사용된다. 시니어 인력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근무시간이 길지 않고 전동장비를 사용하는 만큼 신체적인 부담이 적기 때문에 건강을 지키면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서다. 특히 시니어 인력 대부분은 동료나 일반인과의 대화, 사회참여 등에서 높은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지역관광 활성화에도 응용된다. 시니어가 지역 문화재해설사로 참여하고 관광객을 전동세발자전거에 태워 문화재를 탐방하는 ‘이바구 자전거’가 대표적인데 이미 부산 동구의 새로운 명물이 됐다.

이바구길 사업은 부산 동구가 추진하는 테마형 골목길 조성사업으로 이 중 이바구 자전거, 게스트하우스 운영 등을 통해 시니어 일자리도 창출하는 사업이다. CJ대한통운이 운영과 장비를 지원하며 부산 동구청,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행정지원과 인력공급을 맡는다.

이밖에도 CJ대한통운은 택배터미널에 카페를 마련, 여성시니어들이 간편식과 음료를 판매함으로써 여성시니어는 일자리를, 택배기사들은 복지증진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자료제공=BGF리테일
/자료제공=BGF리테일

◆ 특별한 기술·경력 없이도 OK~
서비스 마인드가 조금 더 투철하다면 편의점 직원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편의점 직원은 특별한 기술이나 경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게 장점.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지난 2010년부터 업계 최초로 보건복지부, 노인인력개발원과 함께 ‘시니어 스텝업(Step-up) 일자리 만들기’ 협약을 맺고 노인일자리 창출을 위한 ‘시니어스태프’ 제도를 시행 중이다.

이는 구직을 원하는 노년층이 노인인력개발원에 지원 신청해 BGF리테일에서 제공하는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전국 CU 매장에서 시니어스태프로 정식 채용되는 프로그램이다.

지원자는 간단한 면접을 거쳐 일정기간 동안 소양교육, 직무교육, 현장교육을 마치면 CU매장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게 된다. 인턴기간 동안에는 가맹점주 또는 영업사원(SC) 등이 멘토로 지정돼 현장적응과 업무스킬 향상을 지원해준다.

모든 과정을 이수한 지원자는 본인이 원하는 지역으로 CU 시니어스태프 구직 리스트에 등록되고 시니어스태프 채용을 희망하는 가맹점주와의 협의를 통해 정식으로 편의점에서 근무하게 된다.

◆ 누이 좋고 매부좋은 ‘新상생 모델’

이밖에도 취약계층 돌봄 서비스, 생활용품 상담사 등 다양한 시니어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기업이 많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만 55세 이상 어르신 1000명에게 임대주택 시설물 안전점검, 단지 환경정비, 돌봄서비스 등의 일자리를 제공한다. 유한킴벌리는 생활용품 판매, 상담사, 판촉활동 등의 분야에서 시니어 사원을 채용한다. 통상 하루 4.5시간(4시간 근무·0.5시간 휴식)·주5일 근무를 원칙으로 한다.

이 같은 채용제도를 잘 활용하면 시니어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기업은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 ‘윈윈’ 효과가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니어일자리야말로 최고의 복지”라며 “어르신의 경우 용돈은 물론 건강과 삶에 대한 즐거움을 얻고 기업은 비용을 줄이며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상생모델”이라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