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중앙회가 이달 발표한 '2025년 대규모유통업체 입점 중소기업 거래 실태조사'에서 신세계가 주요 지표 4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진은 신세계 명동 본점 외부 전경. /사진=신세계백화점

정유경 신세계 회장이 이끄는 신세계백화점이 어려운 경영 환경에서도 협력사 마진율(수수료)을 업계 최저 수준으로 유지해 주목받고 있다. 박주형 신세계 대표가 수익성 압박을 협력사에 전가하지 않고 상생을 택한 결과 본업 경쟁력 강화 효과와 함께 입점 중소기업들로부터 가장 만족도 높은 백화점에 선정됐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이달 발표한 '2025년 대규모유통업체 입점 중소기업 거래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은 ▲상생 협력 사업 체감도 ▲직매입 마진율(낮은 순) ▲판매대금 지급 예측성 ▲직원 파견 부담(적은 순) 등 주요 상생 지표 4개 항목에서 조사 대상 백화점 중 1위를 기록했다.


상생 협력 사업 체감도는 5점 만점에 3.8점으로 백화점 평균(3.7점)을 웃돌며 1위를 차지했다. 입점 업체의 82.8%가 신세계의 상생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는 경쟁사보다 7~13%포인트가량 앞선 수치다.

주목할 부분은 신세계백화점이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 속에서도 상생 기조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신세계백화점의 별도기준 3분기 총매출은 1조711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늘었지만 리뉴얼 투자 등으로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억원 감소한 840억원을 기록했다. 이로써 올해 신세계백화점의 영업이익은 1분기 58억원 감소, 2분기 109억원 감소에 이어 3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그럼에도 이번 조사 결과 신세계백화점의 직매입 마진율(수수료)은 23.4%로 업계 최저를 기록했다. 백화점 업계 평균인 23.9%보다 0.5%포인트 낮고, 최고 마진율인 A백화점(24.5%) 대비 1.1%포인트 낮은 수치다. 수익성이 줄면 협력사 수수료율 인상으로 대응하는 업계의 관행과 반대되는 행보다.


업계에서는 신세계백화점의 낮은 수수료 정책을 두고 박 대표가 경영 일선에서 정 회장의 '콘텐츠 동맹' 철학을 충실히 구현해낸 결과로 풀이한다. 정 회장은 평소 콘텐츠 중심의 공간 혁신을 주문하며, 입점 브랜드를 단순한 '임차인'이 아닌 고객 경험을 함께 창출하는 파트너로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갑질' 오명 씻은 특약매입, 상생 인큐베이터로 재탄생

서울 중구에 있는 옛 제일은행 본점 건물을 10년간 보존·복원한 끝에 재개관한 신세계백화점 본점 '더 헤리티지' 외부전경. /사진=신세계백화

중소기업 선호도가 높은 '특약매입' 거래 비중 부문에서 신세계백화점이 업계 1위를 기록한 것은 이러한 철학의 방증이다. 신세계백화점의 특약매입 비중은 73.9%로 전체 백화점 평균인 67.2%를 상회한다.

특약매입은 백화점이 상품을 외상으로 매입해 판매하는 거래 형태다. 재고 부담을 입점업체가 담당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유통업계의 대표적인 '갑질' 사례로 꼽혔으나, 2024년 대규모유통업법 개정 이후 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브랜드 인큐베이터'로 다시 태어났다.

지난해 상반기 시행된 개정안에 따라 인테리어 공사비와 판촉 비용을 백화점과 입점 업체가 합리적으로 분담하게 되면서, 직접 고객을 만나고 브랜드 가치를 키우려는 신진 기업들에게 백화점 특약매입은 대체 불가능한 '기회의 땅'이 됐다. 신세계백화점은 법 개정 이전에는 특약매입 비중이 업계 최저 수준이었으나 제도가 정비된 이후 이를 최대로 늘리며 상생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대금 정산 주기 역시 신세계백화점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입점업체의 93.8%가 월 마감 후 30일 이내에 지급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일부 경쟁사는 대금 지급까지 40일을 넘기는 비율이 30%대에 달했다.

직원 파견 관행에서도 차이가 뚜렷했다. 백화점은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 등 일부 업체에게 직원 파견을 요청하는데 이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또 하나의 인건비 부담이 된다. 신세계백화점의 직원 파견 요청 비율은 17.2%로 업계 최저 수준이었으나, 가장 높은 백화점은 30.7%에 달해 대조를 이뤘다.

이러한 투자는 본업 경쟁력 강화로 돌아왔다. 공간 혁신이 실제 매출 증대로 이어졌다는 협력사 응답률이 96.0%에 달해, 실적 보릿고개 속에서도 협력사를 쥐어짜지 않은 '품격 있는 상생'이란 평가를 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신세계백화점이 강남점 단일 매출 3조원 돌파 등 실적을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협력사와의 신뢰 관계가 있다"며 "수익성 압박 속에서도 저렴한 수수료와 빠른 정산 등 원칙을 지킨 점이 높은 상생 평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