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존주택 거래 영향 받을 것"
정치인 "정부가 위험 대출 증가 주범"
정부가 지난 7월22일 내놓은 가계부채 종합 관리 방안은 빚 갚을 능력을 초과해 대출을 받아 집을 사던 관행을 손질하고 고위험 대출을 분할상환 방식으로 유도해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가계부채를 제거하겠다는 계산이 담겼다.
그러나 최근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규제완화를 1년 더 연장하겠다던 정부가 상환능력 심사를 강화해 실질적인 대출한도를 줄이는 대책을 낸 탓에 일관성 없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따라붙었다.
상환능력 심사 강화로 대출이 어려워질 저소득층과 다중채무자 등 가계부채 취약계층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 없는 반쪽짜리라는 평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의 대책을 바라보는 각계각층에서는 혼란과 실망, 분노의 감정을 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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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신천동 잠실아파트. /사진=머니투데이 DB |
◆ "빚 내서 집 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관련 규제를 강화한다는 소식에 전세난과 집 없는 설움을 버티고 버티다 최근 빚 내서 집을 산 서민은 그야말로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은 앞으로 삶이 더 팍팍해 질 것이라는 불안감에 떨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씨(37)는 "월세 부담이 커 전세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물량이 없어 결국 빚을 내 집을 산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앞으로 원금도 같이 갚으라고 하면 어떻겠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결혼을 앞둔 박모씨(32)는 "최근 대출을 받아 신혼집 계약을 마쳤다"면서 "아내가 임신해 언제 맞벌이를 할 수 있을 지 기약도 없는 상황인데 앞으로는 거치기간 연장이 안된다고 하니 혼자 이자와 원금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2008년 이후 오랜만에 쾌재를 부르던 일선 공인중개사들도 이번 대책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신규 분양시장보다는 기존 주택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시각이었다.
강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실장은 "초기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드는 기존 아파트 매매자 대다수가 거치식 대출을 많이 받는다"며 "따라서 이번 대책이 투자수요는 물론이고 일부 실수요자의 거래도 위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목동 B공인중개소 대표는 "심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부동산의 특성상 분명한 악재라고 생각한다"며 "훈풍을 이어오던 투자수요가 위축되면 부동산시장의 파장은 예상보다 더 클 수도 있어 실수요자들이 적잖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개포동 C공인중개소 대표는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는 최근 사업에 속도가 붙으면서 매맷값이 너무 올랐는데 가격 상승세에 제동이 걸릴 것 같다"며 "주변 시세가 낮아지면 조합원의 분담금이 높아질 수 있는 만큼 자칫 사업이 표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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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 "부동산시장에 후폭풍 불 것"
부동산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으로 시장에 적잖은 파급효과가 미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부터 분양시장을 중심으로 부동산시장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저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유도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 센터장은 "이번 대책의 후폭풍이 당장 불지는 않겠으나 결과적으로 분할상환 비중이 늘어나면 고가 아파트, 특히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 센터장은 이어 "내년 1월 대책이 도입되면 자영업자와 은퇴계층 등이 직접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올해 하반기 중소형 아파트 청약에 수요가 몰릴 수 있다"면서 "이는 미래 수요를 미리 당겨서 소진하는 셈이어서 내년 상반기에 거래절벽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가뜩이나 건설사들의 밀어내기 분양으로 입주시점에 과잉공급 문제가 뒤따를 것이라는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대책 시행 전 거래가 급증하면 이런 문제가 더욱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대책이 집값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이번 대책이 기존 주택시장에만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지만 주택구매 심리를 위축시킬 것이 분명하다"며 "예단할 수 없으나 집값이 하락할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김 연구위원은 "심각한 전세난에 어쩔 수 없이 집을 사야 하는 젊은 층과 소득 증빙이 어려운 자영업자와 노년층에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내년 1월 대책을 시행하기 전 정부는 대안이 될 수 있는 후속대책도 내놔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줄여나가겠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한계점이 뚜렷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대책이 금융 쪽에만 치우쳐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감시팀 부장은 "정부가 부동산경기 부양을 위해 풀어줬던 LTV와 DTI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며 "저소득 계층이 부채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가계소득을 높이는 방안도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갈피 못 잡는 정책… 野 '맹공세'
가계부채가 심각한 상황에서 설익은 대책이 나오자 야당은 강도높은 공새를 퍼부었다. 최재천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 신임 정책위의장은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최 의장은 지난 7월23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가계부채는 최악이고 최소한의 주거권조차 보장 못하는 무능한 행정부는 오락가락한다"며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예측 불가능한 정치, 경제적 메시지가 시민의 삶과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질타했다.
정세균 새정연 의원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빚을 권해놓고 원금까지 갚으라고 하면 가처분 소득이 줄어 결국 내수가 위축돼 경제가 힘들어질 것이다. 이제 일자리를 만들고 가계소득을 늘려야 할 때"라며 최 의장과 의견을 같이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대출 규제완화를 주도하면서 가계가 한도 끝까지 빚을 늘리도록 한 최경환 경제부총리야말로 위험 대출 증가의 주범"이라며 "정부는 가계부채 문제가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한가한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