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여가시간을 보내는 ’홈족’이 늘고 있다. 단순히 지출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나만의 공간에서 힐링하기 위해서다. 홈족이 증가함에 따라 홈퍼니싱, 홈술, 홈브루잉, 홈카페, 홈트레이닝 등 다양한 시장이 만들어졌다. 아예 집에서 창업까지 한다. 기업들도 홈족을 타깃으로 삼고 이들을 공략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 수립에 분주하다. <머니S>는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자리잡은 홈족문화를 조명하는 한편 이들이 창출한 다양한 시장을 살펴봤다. 더불어 홈족을 겨냥한 기업의 사업전략과 홈창업 사례 등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 |
/사진=이미지투데이 |
[집돌이 라이프, 집순이 경제학] ①집에서 찾는 행복, 홈족이 뜬다
#. 고된 업무를 마친 보통날. A씨는 “한잔 하자”는 직장동료의 제안을 뿌리쳤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그는 대충 샤워를 끝낸 뒤 반바지에 목이 늘어난 셔츠 차림으로 냉장고에 넣어둔 캔맥주를 집어든다.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흘러넘친 거품이 손가락을 적시지만 대충 옷에 슥슥 닦고는 TV 앞에 앉아 맥주를 들이켠다. 고단했던 하루가 맥주 한모금에 꿀꺽 넘어가는 기분이다. 이보다 완벽한 행복이 또 있을까.
집에서 나홀로 여가를 즐기는 ‘홈족’이 늘어난다. 홈족은 사회적 관계의 부담에서 벗어나 혼자 집에서 즐기는 ‘나만의 시간’으로 행복을 찾는 이들을 말한다. 1인 가구 증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 인구·사회구조의 변화와 ‘욜로’(YOLO),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확산 등의 생활 트렌드가 맞물린 라이프 스타일이 홈족을 만들었다.
◆성인 10명 중 6명은 ‘홈족’
홈문화의 대표는 ‘홈술’이다. 말 그대로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전에 없던 생활패턴이다. 주점에서 마시는 술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상대와의 얘깃거리를 찾아야 할 부담도 없다. 혼자 마시고 혼자 취해 혼자 잠드는 삶이 늘어난다.
실제 가정용 술을 구입한 ‘1인당 월평균 주류 소비지출’은 2013년 1만800원에서 2016년 1만2300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주점업의 서비스업 생산지수는 90.6에서 78.8로 줄었다.
해외에는 ‘팬츠드렁크’(Pantsdrunk)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북유럽에서 나온 말인 팬츠드렁크는 집에서 편안하게 속옷만 입고 홀로 술을 마시는 행위를 말한다. 세계 행복지수 1위 국가인 핀란드 국민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최고의 힐링으로 꼽힌다.
![]() |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
홈술은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인 셈이다. 비단 술뿐일까. 집에서 커피를 즐기는 ‘홈카페’, 운동에 몰두하는 ‘홈트레이닝’, 집을 꾸미는 ‘홈퍼니싱’, 외모를 관리하는 ‘홈뷰티’ 등 자기 집에서 홀로 즐기며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는 다양한 행위가 인기를 얻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16 문화향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가시간을 혼자 보내는 비율’은 2014년 56.8%에서 2016년 59.8%로 늘어났다. 여가활동 내용 중 1위는 ‘TV 시청’(46.4%)이 차지했고 2위는 ‘인터넷 검색’(14.4%)이었다. 집에서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단순한 활동이 새로운 여가 트렌드로 떠오른 셈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알바몬과 지난해 11월 성인남녀 16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기가 홈족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58.6%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특히 젊을수록 ‘홈족’ 응답 비율이 높았다. 응답자 중 20대의 68.5%, 30대의 62.0%가 스스로를 홈족이라고 인식했다. 더욱이 전체 응답자의 75.4%가 앞으로 홈족이 늘어날 것 같다고 전망했다.
![]() |
/사진=이미지투데이 |
전문가들은 홈족 확산이 사회체제 변화와 맞닿아있다고 분석한다. 윤상철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집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가 과거와는 달라졌다”며 “1인가구가 늘어나고 가족과 함께 살더라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바깥이 아닌 집에서 뭔가 하려는 활동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인터넷 등을 통해 집에서도 충분히 소비가 가능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용과 사전에 여러 계획을 세워야 하는 외부활동보다는 혼자 집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행위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변화로 집단보다는 개인의 활동이 보편화되면서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상대적으로 크게 느끼게 됐다”며 “학교든 직장이든 바깥에서 복잡한 인간관계를 맺을 필요 없이 집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며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게 홈족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경쟁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이 집에서 개인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사람으로부터 발생하는 피로감은 물론 불필요한 감정과 에너지소모를 줄인다는 장점이 있어서다”고 평가했다.
다만 ‘과유불급’을 명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 교수는 “(홈족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진정한 성찰이나 힐링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며 “특히 개인의 시간이 증가하면 사회적인 네트워크가 분자화되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곽 교수도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당장은 편하고 좋을지는 몰라도 홀로 지내는 시간이 너무 길어질 경우 자칫 사회생활에서 생기는 작은 불편도 감내하지 못하는 등 일상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관계를 단절하기보다는 스스로 기준을 정해 가끔씩이라도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5호(2019년 1월15~2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