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수천년간 정보전달의 매개로 사용한 텍스트가 점차 사라진다. 신문·독서 인구가 감소하고 이미지·동영상시장이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며 제로텍스트 현상을 가속화한다. Z세대를 포함한 젊은층이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제로텍스트를 반기는 것과 달리 노년층은 콘텐츠 내용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호소한다. <머니S>는 글자가 없어지는 제로텍스트 현상을 짚어보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자세에 대해 살펴봤다. <편집자주>
[글자가 사라진다… ‘제로 텍스트’ 시대-③] NO 텍스트 시대의 ‘부작용’
# 평소 유튜브에서 뉴스를 검색하던 대학생 장모씨는 포털사이트 애플리케이션(앱)을 휴대폰에 재설치했다. 유튜브에서 시청하는 뉴스영상의 질이 최근 급속히 낮아져서다. 장씨는 “똑같은 내용으로 구성된 영상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추세”라며 “구독하던 유튜버의 영상 콘텐츠도 점점 부실해지는 것 같아 다시 포털에서 뉴스를 검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견기업의 김모 부장은 최근 한 후임 직원과 메신저 대화를 나누다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직원이 대답하는 모습을 상형화한 ‘이모티콘’으로 답변해서다. 김 부장은 “친근한 방법으로 답변하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굳이 업무 메신저에서 이모티콘을 사용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이모티콘은 또래 대화방에서나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로텍스트(Zero Text)시대에 이미지와 영상은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이나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 활용된다. 간편함을 입은 이미지와 영상은 사람들의 뇌리에 보다 쉽게 메시지를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로텍스트시대 속 영상뉴스의 부작용이나 창의력 결여와 같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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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우후죽순’ 영상뉴스 부작용
텍스트로 소비되던 대표적인 콘텐츠는 신문이다. 우리는 종이신문과 온라인신문을 통해 글을 읽고 뉴스를 소비했다. 최근 영상뉴스가 각광받으며 뜬 플랫폼채널이 유튜브다. 눈이 침침해 글자를 읽기 어렵거나 읽어도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유튜버들은 쉽고 재미있는 3~5분짜리 뉴스영상을 제공하며 인기를 끌어왔다. 현장감 있는 영상은 신문기사에 삽입된 사진 한장보다 기사 전체를 더 이해하기 쉬웠다.
최근 한 조사결과도 새로운 영상뉴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이상인 53.2%가 방송사보다 ‘신뢰하는 사람’이 생산하는 영상뉴스를 시청한다고 답했다. 전통적인 언론채널인 지상파TV나 종이신문에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미디어가 만든 뉴스를 보는 사람이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언론사나 공신력 있는 유튜버가 아닌 사람들이 만든 영상 콘텐츠는 갈수록 부실해지는 추세다. 특정 신문기사 내용을 몇개의 이미지와 함께 짜깁기한 영상뉴스가 많다. 이들은 더 많은 조회수를 얻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이나 섬네일(대표이미지)을 쓰기도 한다. 심지어 조회수가 적다 싶으면 뉴스가 아닌 다른 영상콘텐츠를 제작해 업로드한다. 뉴스채널로 알고 영상을 시청해온 사람들은 결국 구독을 취소한다.
미디어업계 관계자는 “제공자는 뉴스에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입혀야 한다”며 “하지만 유튜브 속 영상뉴스들은 자극적인 재미만을 양산할 뿐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없다. 많은 유튜버가 만들기 쉬운 영상뉴스를 너도나도 양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지와 영상만으로 만든 뉴스에 ‘진짜 뉴스’는 없고 누구나 포털에서 검색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만 넘친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쉽고 이해하기 쉬운 점을 노려 중장년층에게 가짜 영상뉴스를 전파하는 유튜버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 후보시절,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등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가짜뉴스는 논란이 됐다. 뉴스를 텍스트보다 영상과 이미지로 소비하길 원하는 50대 이상 중장년층은 가짜 영상뉴스를 진짜로 받아들였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이 지난 4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유튜브 이용자 1위는 50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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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안하는 Z세대
제로텍스트시대의 새로운 고민은 사람들이 점점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영상을 창조하고 만든 사람이 아니라 이것을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사람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아닌 직관적인 결과물만을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결과물을 그냥 받아들일 뿐 생각을 더 하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나의 감정표현이나 의견전달도 이미지나 영상으로 대체된다는 점이다. Z세대로 대표되는 젊은층에게 텍스트는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로 전락했다. Z세대란 1995년부터 2005년 사이에 태어나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영상으로 소통하는 ‘디지털 네이티브’를 말한다. 이들은 글자보다는 이미지, 이미지보다는 영상콘텐츠를 더 선호한다.
메신저 속 이모티콘은 Z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감정표현 콘텐츠다. 카카오에 따르면 지난해 이모티콘 누적구매자는 2000만명을 돌파했으며 2012년 월 평균 4억건 수준이던 발송량도 올해 월 22억건으로 늘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의 생각을 개성 있게 전달하려 애쓰지만 그 속에서 한 구절, 한 문장으로 ‘나’를 표현하려는 창의력은 결여된다. 상업화된 이모티콘으로 남들과 똑같이 나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전상진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영상과 이미지에 길들여진 세대는 보다 자유분방할 수 있지만 복잡한 것을 점점 더 꺼리게 되는 성향이 커질 수 있다”며 “영상시대에 이 부분은 앞으로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9호(2019년 7월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