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장맛비에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더블헤더(양 팀이 하루에 2경기를 치르는 것) 조기시행'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이상기후가 원인이 됐지만 늦어진 시즌 개막에도 144경기를 고집했던 KBO에 대해 팬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달 28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한 야구팬들이 이날 예정됐던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우천 취소되자 허탈한 모습으로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달 28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한 야구팬들이 이날 예정됐던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우천 취소되자 허탈한 모습으로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1

KBO가 준비한 계획 무용지물 만든 '역대 최장 장마'

KBO는 지난 11일 오후 1시 열린 2020년 KBO 제6차 실행위원회에서 정규시즌 취소경기 재편성 시행세칙 변경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실행위는 오는 9월1일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더블헤더 편성을 일주일 앞당긴 8월25일부터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역대 최장기록과 맞먹을 정도의 장마를 맞아 우천취소 경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KBO리그는 오는 25일 경기부터 우천취소 시 다음날 더블헤더(특별 서스펜디드 경기 포함)를 우선 시행한다. 만약 이동일 경기가 취소될 경우 차후 동일 대진을 가질 때 둘째날 더블헤더로 붙는다.


KBO는 이외에 주중 더블헤더를 치렀거나 다음주 더블헤더가 예정돼 있더라도 토요일 혹은 일요일 경기가 노게임 선언되면 월요일 경기 편성이 가능하도록 했다. 다만 경기는 기존과 같이 최대 8연전까지만 편성할 수 있다.

앞서 KBO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개막이 5월까지 미뤄지자 경기 시행 세칙을 개막 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세칙은 우천 등 이유로 경기가 취소될 시 더블헤더와 월요일 경기를 편성하도록 했다.

더블헤더는 3연전 중 첫 2경기, 2연전 중 첫 경기 취소시 다음날 혹은 동일 대진 둘째날 편성된다. 5회 정식경기 성립 이전 우천 등의 사유로 경기가 종료된 경우 더블헤더가 아닌 다음날 서스펜디드 경기로 시행한다. 3연전과 2연전 주중 마지막 경기들이 취소되면 동일 대진 둘째날 더블헤더로 편성되며 일요일 경기가 취소되면 모두 월요일로 우선 밀린다.


KBO는 선수들의 건강을 고려해 혹서기(7~8월)에는 더블헤더를 갖지 않기로 했다. 7월과 8월에 주중 경기가 취소되면 9, 10월 동일 대진 둘째날 더블헤더로 편성된다. 주말경기는 월요일 혹은 9, 10월 동일대진 둘째날 더블헤더 순으로 잡힌다.

하지만 기록적인 장마 앞에 이런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될 위기다. 기상청에 따르면 11일을 기해 중부지방의 연속 장마기록은 49일째를 맞았다. 지난 2013년 6월17일~8월4일 동안 세운 역대 최장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악천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야구는 이런 날씨 속에 제대로 일정을 소화하기 어려웠다. 7월 한달동안 취소된 KBO리그 경기는 25경기에 이른다.
지난달 22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 이날 예정됐던 키움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의 KBO리그 경기가 우천취소됐다는 안내문이 게재돼 있다. /사진=뉴스1
지난달 22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 이날 예정됐던 키움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의 KBO리그 경기가 우천취소됐다는 안내문이 게재돼 있다. /사진=뉴스1

'꼭 144경기 다 했어야 하나'… 일각선 엔트리 변경 촉구도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온라인 상에서는 지난 5월 리그가 개막하기 전부터 144경기를 모두 치르는 데 따른 우려가 존재했다. 리그 개막이 2개월 가까이 늦어진 상황에서 모든 일정을 강행한다는 건 선수들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KBO는 끝끝내 일정을 강행했다.
하지만 정작 대안으로 나온 지침이 제대로 효과를 거뒀는지는 미지수다. 12일 오전 기준 현재까지 취소된 2020시즌 경기는 모두 45경기지만 이 중 더블헤더나 월요일 경기 등으로 소화된 것은 9경기에 불과하다. 여기에 7월 이후 집중호우로 취소 경기가 쏟아져나오며 향후 일정이 어디까지 늘어날지도 이제 미지수가 됐다. 일각에서는 10월을 넘어 초겨울로 향하는 11월까지 정규시즌 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가 우천취소가 된다고 해도 선수들의 컨디션이 온전히 유지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일반적으로 우천취소 결정은 경기 당일 오후부터 경기 시작 시간을 전후해 내려진다. 그때까지는 오전에 아무리 많은 비가 내린다 한들 경기가 오후에 취소될 지 누구도 모른다. 결국 선수들은 우천취소 여부와 상관없이 평소 루틴대로 경기를 준비하고 연습을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기에 돌입한 이후에도 1시간이 넘도록 경기장에서 대기하기도 한다. 우천취소가 된다고 하더라도 선수들의 피로가 온전히 회복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온라인상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줄을 잇는다. 야구팬들은 저마다 "지금이라도 선수들 연봉 줄이고 경기 수를 줄이라", "다음 시즌 투수들 관리 어떻게 하도록 할 셈이냐", "시즌 전부터 경기 수를 조절했어야 했다", "꼭 (시즌 후반기) 2연전까지 모조리 해야겠나", "이러다 진짜 겨울야구 하겠다" 등의 의견을 쏟아냈다.

일부 팬들은 일정 조정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왜 확대엔트리 등 대안을 적극 제시하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현재 KBO는 2연전이 시작되는 오는 18일부터 1군 엔트리를 기존 28명에서 33명으로 조기 확대시키기로 했다. 또 더블헤더 경기에는 기존 정원에 1명을 추가 등록이 가능하다. 하지만 11일 발표된 추가 세칙에서는 엔트리와 관련된 부분이 제외됐다.

아이디 '티****'을 쓰는 한 누리꾼은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더블헤더 (조기 시행을) 이해한다"라면서도 "이번 시즌에 한해 1군 가용인원을 더 늘려줘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다른 누리꾼 '뒷****'도 "더블헤더 조기시행은 하면서 왜 엔트리 확장은 하지 않느냐"라고 비판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