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재민 기자 = 지난 2018년 초 법무부 내 성추행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로부터 촉발된 미투(Me too) 운동이 2년여가 지나며 직장 내 성범죄에 대한 사회 인식은 많이 바뀌었지만, 피해자 혹은 가해자에 대한 처우와 인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란 지적이 인다.

정·재계는 물론 연예인, 유튜버 등에 이어 일반인들 사이에서 '미투'는 자연스러워졌지만, 한편에선 의혹만으로 벼랑 끝으로 몰리는 경우가 허다하고 다른 한편에선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도 여전하다.


박진성 시인(42) © 뉴스1
박진성 시인(42) © 뉴스1

지난 14일 포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박진성 시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날 블로거와 SNS를 통해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올리고 잠적했기 때문.
다행히 박 시인은 돌아왔지만 그는 여전히 2016년 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였다.

그는 2016년 '여성 습작생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이후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자신을 성폭력 피해자라고 주장한 여성은 무고 및 허위 사실 유포 혐의가 인정됐지만 여전히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표현했다.

배우 이진욱씨가 지난 2016년 서울 수서경찰서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해 간단한 소감을 하고 있는 모습. 이 모습은 무고와 관련해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회자된다. © News1 권현진 기자
배우 이진욱씨가 지난 2016년 서울 수서경찰서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해 간단한 소감을 하고 있는 모습. 이 모습은 무고와 관련해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회자된다. © News1 권현진 기자

◇인식은 바뀌었다지만…무혐의 종결에도 차가운 시선은 여전
박 시인은 배우 오달수씨를 언급하기도 했다. 오씨 역시 지난 2018년 2월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때 여성 배우 두 명을 성추행 및 성폭행했다는 가해자로 지목됐지만 결국 지난해 무혐의로 종결됐다.


하지만 이름이 거론됐다는 이유만으로 대중의 눈에서 벗어났고, 작품 복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당시 배우 문성근씨는 "(당시에는) 엄청 때려대더니 '혐의없음'은 본인 스스로 보도자료를 내는 수밖에 없구나"라며 언론의 보도 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연예계뿐 아니라 이제 미투와 무고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흔한 주제가 됐다.

이제 미투 의혹이 제기 되도 선뜻 비판에 나서기보다는 '아직 판결이 난 것이 아니니 기다려봐야 한다', '이럴 땐 무조건 중립 기어를 넣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난 2016년 배우 이진욱씨가 성폭행 혐의로 피소된 뒤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해 "상대방이 무고를 정말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무고는 정말 큰 죄"라는 말도 의혹이 나올 때마다 재조명받고 있다.

하지만 미투 의혹에서 벗어나도 그들을 향한 여전한 가해와 차가운 시선은 여전하다.

박 시인은 "무혐의 처분을 받고 상대방이 무고가 나와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제발 '사회적 감옥'에서 꺼내 달라"고 호소했다.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원들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앞에서 열린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의 권리보장 및 일상회복,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 문화 근절 등을 촉구하고 있다./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원들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앞에서 열린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의 권리보장 및 일상회복,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 문화 근절 등을 촉구하고 있다./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피해자 호칭 논란부터 시작된 2차 피해 여전
지난 7월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성추행 고소 이튿날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피해자를 부르는 호칭을 두고 때아닌 논란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 측에서 박 시장의 미투 의혹에 대해 피해자를 두고 '피해호소인'이란 표현을 쓰면서 2차 피해 우려가 일었다.

당시 한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입사문제에서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를 물었고 피해자 측은 "참 잔인하다. 성폭력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선 도마 위의 생선과 같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박 전 시장의 사망이 100일이 넘었지만 수사는 여전히 난항이고 피해자의 2차 피해만 커가고 있다.

피해자 측은 "현재 신상에 관한 불안과 위협 속에서 거주지를 옮겨 지내고 있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 2차 가해 속에서 다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15일 박 전 시장 사건 100일을 맞아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이 출범된 가운데 그들은 여전한 2차 피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사건의 1차적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은 '피해호소인'이란 모호한 명칭을 사용하고, 정부 역시 입장표명이나 개선조치 방안을 세우지 않고 있다"며 "그 사이 일부 세력은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피해자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 2차 피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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