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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옹진군 대연평도 앞바다의 꽃게잡이 어선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인도네시아는 500만원, 베트남은 1000만원.'
국내 원양어선과 20톤 이상 연근해 어선에서 일하려는 이주 노동자가 사설 '송출(현지 인력 모집)업체'에 내야 하는 비용이다.
국내에서 일하는 동안 '송입(국내 관리)업체'에 수수료 명목의 별도 비용을 내기도 한다. 외국인 선원 모집과 관리를 민간에 맡겨둔 탓에 벌어지는 일이다. 고액의 송출 비용 등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된 지 오래다.
◆ 선원 모집 민간에 맡겼더니…'보증금에 수수료까지' 송출 비용에 휘청
고기잡이는 고된 일이다. 노동 강도가 높다 보니 배를 떠나는 한국인은 늘고 있다. 그나마 남은 선원들의 고령화 문제도 심각해 외국인 선원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30일 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이하 이주네트워크)에 따르면 어선은 조업 위치에 따라 먼 바다로 나가는 원양어선과 연근해 어선으로 나뉘고, 연근해 어선은 다시 20톤 이상과 미만으로 구별할 수 있다. 20톤 이상 연근해 어선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원(2018년 기준)은 9700여명이다. 20톤 이상 총 어선원(2만3700여명) 중 41%에 해당하는 수치다.
한국 어선에서 일하는 10명 중 4명이 외국인 선원인 셈인데, 외국인 선원을 고용하는 근거 법률과 모집 과정은 상이하다. 이에 따라 외국인 선원의 인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20톤 이상 연근해 어선에 일하는 외국인 선원은 선원법 대상인 '외국인 선원제도'(E-10-2)로 들어온다. 주무 부처는 해수부지만, 외국인 선원의 모집과 관리는 노동시장에 맡겨져 있다. 해수부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은 수협중앙회와 선원노조 간 합의로 도입 규모 등이 결정되면 현지 업체가 인력을 모아 보내준다. 이때 외국인 선원들은 고액의 송출 비용을 낸다. 국내에서 고용 관리는 별도 업체가 담당한다.
보증금도 내야 한다. '배에서 도망가지 않겠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이외 각종 수수료 등을 포함하면 한국행에 필요한 돈은 1500만원 안팎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탓에 은행과 친척, 친구들로부터 돈을 빌려야만 하는 구조라고 이주네트워크 측은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를 주무 부처로 하는 20톤 미만 어선은 고용허가제(E-9-4)를 통해 외국인 선원을 받는다. 우리 정부와 송출국 정부가 선원 모집 단계를 주관하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적다.
◆ 관리·감독 허술에 어두운 현실…쉼 없는 노동에 저임금
외국인 선원은 한국 어업을 지탱하는 근간인데, 이들을 대하는 우리의 법과 제도는 허술하다. 바다 위 현실은 차갑고 거칠다.
이주네트워크는 "외국인 선원들은 고액의 송출 비용 외에도 장시간 노동, 저임금 문제에 시달린다"고 지적한다. 20톤 이상 연근해 어선의 경우 평균 노동시간은 15시간 안팎에 달한다. 선원법은 근로시간의 제한, 휴게시간과 휴일 보장에서 어선원을 예외로 두고 있어서다.
한국인 선원에 비해 임금도 낮다. 외국인 선원은 초과 수당이나 보합제(어획량에 따른 수익을 일정한 비율로 나누는 임금체계)에서 제외되기 일쑤다. 간혹 보너스를 받는 경우도 있으나 보합제와는 구별되는 것이라고 이주네트워크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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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
이는 결국 미등록 외국인(불법체류자) 증가라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강제 노동과 저임금을 참지 못하고 배를 떠나는 외국인 선원은 늘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통계연보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5~2019년) 선원 취업(E-10) 자격으로 들어왔다가 불법 체류자로 분류된 외국인은 2만9093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 모집은 공공기관, 관리는 민간?…"정부 '이원화' 정책에 사각지대 지속"
외국인 선원의 고용 환경과 인권 실태가 불거지자 정부는 제도 개선에 나섰다. 지난 3월 해양수산부가 입법예고한 '한국수산어촌공단법' 얘기다. 20톤 이상 연근해 어선의 외국인 선원 수급과 관리 업무를 해수부에 신설되는 한국수산어촌공단으로 이관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통해 외국인 선원 모집 및 관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송출 비용과 인권 문제 등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사용자 단체인 수협 등이 자발적으로 나서 근로자 처우 개선 등에 나서기는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수부는 지난달 국민참여입법센터에서 관련 의견도 받았다.
그러나 수산업계 반발이 심하다. 수협 등은 관리 주체 변경으로 인한 혼선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동안 민간이 축적한 노하우에 따라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시장에 정부가 무임승차 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각에선 해수부가 낙하산 인사를 앉히기 위해 별도 자리를 만드는 것이라는 눈초리까지 보내고 있다.
해수부는 한발 물러났다. 추가 설명자료를 통해 현지 선발과 교육, 송출업무는 공공기관이 담당하고 국내 관리는 기존 처럼 수협과 민간 업체 중심으로 이어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주네트워크는 외국인 선원 모집과 국내 관리를 '이원화'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불러올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1인당 1000만원이 넘는 송출비용은 현지 업체와 파트너십 형태로 운영되는 국내 업체가 나누는 구조다. 결국 이들의 이윤 보장을 위해 송출비가 계속 높아져 왔는데, 송출 업무를 공공기관이 가져가면 국내 업체의 수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주네트워크 측은 "국내 관리 업체가 편법으로 외국인 선원을 갈취할 우려가 있다"며 "아니면 관리를 맡긴 정부에 보조금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주네트워크는 수협과 민간 업체의 업무 효율성으로 외국인 선원의 이탈율이 낮다는 주장도 잘못된 해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탈률이 낮은 것은 이탈보증금 지불 등 사실상 강제적 조치에 따른 것이라는 의미다.
해수부는 앞서 예정된 대로 오는 31일 인도네시아 정부와 '어선원 송출 및 근로 분야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계획이다. 다만, 관련 업계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내달 초까지 의견 수렴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MOU는 외국인 선원 관리 업무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선언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며 "세부적인 이행 방안은 의견 수렴을 마친 뒤 내부 협의를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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