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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12일 국내 최초 남성 패션 디자이너이자 세계 무대를 누빈 패션계 거장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이 향년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특유의 올화이트 의상과 신비로운 무대 연출로 전세계 이목을 붙잡았다. 사람들은 그를 단순히 옷을 디자인 하는 사람이 아닌 패션 외교관으로 불렀다.
한국 패션의 전설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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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패션을 세계 무대에 알린 앙드레 김은 1935년 9월21일 경기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현재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태어나 여느 아이들과 같이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평범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하루종일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놀던 그는 고양중학교 재학때부터 미술 자체에 깊은 흥미를 갖게 되었다. 이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을 떠갔고 한 극장에서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화니 페이스'를 접하게 된다. 배우들이 입은 패션에 강하게 매료된 앙드레 김은 본격적으로 의상과 관련해 진로를 결정하게 되고 그는 외국 서적을 살피며 독학을 하다 1961년 국제 복장학원 1기생으로 입학을 한다. 그곳에서 예술적 감성을 키운 앙드레 김은 1962년 '살롱 앙드레'를 열고 디자이너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훗날 앙드레라는 이름은 프랑스 대사관의 한 외교관이 '외국인이 쉽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라며 지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로 뻗은 한국 패션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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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남성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순백의 무대에 동양적인 문양, 화려한 색감의 디자인이 특징으로 웨딩드레스 및 이브닝드레스로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당대 인기 배우인 엄앵란 등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했으며 예술적 연출이 가미된 그의 패션쇼는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다.
앙드레 김은 1966년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인 디자이너 최초로 해외 패션쇼를 개최한 이후 미국 뉴욕, 일본 도쿄, 중국 베이징, 이집트 카이로, 호주 시드니 등 세계 각지에서 패션쇼를 선보이며 한국 패션의 얼굴로 자리잡았다. 그는 올림픽 유니폼, 미스 유니버스 공식 의상 제작에도 참여했으며 유니세프 친선대사에도 임명돼 국제적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등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사절로서 맹활약했다. 앙드레 김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예술문학훈장, 이탈리아 문화공로훈장, 대한민국 문화훈장 등 국내외 다양한 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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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미혼이었던 앙드레 김은 1982년 입양한 아들 김중도를 가족으로 삼아 앙드레 김 아틀리에를 운영했고 손자까지 얻으며 말년을 가족과 함께 보내다 2010년 8월1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그가 떠난 뒤에도 아들에 의해 그의 브랜드는 유지되었고 수많은 추모 전시와 회고 패션쇼가 개최되며 앙드레 김의 미학과 정신은 지금까지 패션계에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