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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게재 순서
(1) 법적 지위 없는 재개발·재건축 '예비신탁사' 지정 난립
(2) 목동7단지 준비위 활동 중에 등장한 단체의 개별 행보
(3) "일단 따고 보자" 재개발·재건축 뛰어드는 신탁사들
사업에 속도를 낸다는 명분으로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예비신탁사를 선정하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신탁사와 관련한 분쟁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높은 보수로 인해 신탁방식을 선호하지 않는 소유주들과의 갈등도 사업 추진 과정에서 새로운 장애 요소로 부상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의 3대 사교육 1번가로 주거 선호도가 높은 목동신시가지에서 예비신탁사 선정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목동5단지(하나자산신탁) 7단지(코람코자산신탁) 9단지(한국자산신탁) 10단지(한국토지신탁) 11단지(한국자산신탁) 14단지(KB부동산신탁) 등이 예비신탁사 등을 지정했다.
문제는 예비신탁사가 소유주들과 일종의 협력관계일 뿐 법적 권한이 있는 추진위원회나 조합 설립 이전엔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신탁 정비사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상황에 정부는 신탁사 선정 주체와 선정 시기 등에 대한 법적 기준을 마련했으나 법 개정까지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행정지도 기준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정비사업에 신탁사 뛰어든 이유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라 2016년부터 신탁사가 정비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수주 경쟁이 치열해졌다. 다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신탁방식으로 입주를 완료한 단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경기 안양시 '한양수자인 평촌리버뷰'(304가구)와 대전 동구 'e편한세상 대전 에코포레'(2267가구) 등이 대표적이다.고금리 여파와 경기침체 영향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자금경색이 심화돼 신탁사의 자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신탁사의 입장에선 수수료율 경쟁으로 종전 사업 방식의 수익성이 떨어짐에 따라 정비사업이 새로운 수익사업이 되고 있다.
2000가구 규모의 서울시내 A아파트는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0.5%의 신탁보수를 제시했다. 추진위원회에 따르면 A아파트의 예상 분양 매출은 6조~7조원으로 수수료는 300억~350억원 수준이 된다. 신탁업계 관계자는 "정비사업이 장기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분양 매출이 유동적이겠지만 관리형 신탁보수의 경우 매출 대비 1.0% 안팎을 받는 구조여서 10년 기준 연 0.1%를 받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신탁업계 매출 1위 한국자산신탁에 따르면 신탁보수는 차입형 토지신탁의 경우 분양수익의 3.5%다. 차입형 토지신탁은 신탁사가 시행사로부터 토지를 신탁 받아 공사비 등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사업이 실패할 경우 신탁사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관리형 토지신탁은 신탁사가 시행사 지위를 승계받아 업무를 수행하지만 자금은 시행사가 직접 조달한다. 보수율은 분양수익의 0.5%이지만 책임준공 관리형 토지신탁일 경우 1.5%에 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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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들 "신탁 정비사업 쉽지 않다"
시공사 입장에선 한때 황금알을 낳던 정비사업의 수주 경쟁이 신탁사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 일각에선 편의 제공과 결탁 등에 대한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서울시내 한 재건축 사업에서 신탁사가 소유주들에게 추진위원회 구성을 지원하며 예비신탁사로 선정되자 논란이 일었다.이에 국토교통부는 사업의 투명성 확보와 사업시행자로서의 신탁사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신탁사가 뇌물 수수한 경우 임직원을 도정법에 따라 처벌토록 기준을 강화키로 했다. 조합방식과 동일하게 전체회의의 사전의결 규정을 위반한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신설한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추진한다. 해당 법안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정재 의원(국민의힘·경북 포항북구)이 지난 10월 발의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 결정해야 하는 여러 계약 조건을 조합이 아닌 신탁사와 하는 것이 시공사 입장에선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소·중견건설업체일수록 협상력에 우위를 점하기가 어렵다 보니 불공정 계약 시비가 종종 발생한다"면서 "하지만 대기업 시공사나 신탁사를 계열로 둔 경우 상황이 다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대형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시공사 입장에서 조합이나 신탁방식 모두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면서 "신탁방식이 유리한 것은 사실 시공사보다는 조합"이라고 말했다. 그는 "초기 자금조달이나 사업시행 고시를 받기 전까지는 신탁방식이 빠를 수 있고 신탁사가 신용도나 자금력이 있다는 점에서 조합이 도움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