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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가 6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지분 4.51%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17일 수탁자 책임위원회(수책위)에서 주주권 행사 방향을 결정한다.
국민연금의 고려아연 지분은 공개매수 직전에 비해 다소 낮아진 상황이나 국내외 여러 기관 투자자들에게 영향력이 큰 만큼 사실상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할 것이란 게 관측이다.
고려아연 지분 4.51% 보유 국민연금, '캐스팅보트' 주목
국민연금 수책위는 이날 오후 회의를 열고 고려아연 임시 주총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입장을 정한다.수책위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여부 등을 논의·결정하는 전문위원회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상장사 의결권 행사는 기본적으로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가 결정하지만 수책위 위원 3분의 1 이상이 주주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해 회부를 요청하면 수책위로 의결권 행사 권한을 넘겨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은 고려아연의 지분 4.51%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에는 7.83%의 지분을 보유했었으나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고려아연의 공개매수에 나서면서 경영권 분쟁이 촉발, 주가가 치솟자 지분 일부를 매도했다.
기존보다 지분율이 낮아지긴 했으나 MBK파트너스·영풍 연합,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을 제외하면 단일 기관 투자자 중 여전히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의 입장은 국내외 기관 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이번 경영권 분쟁의 캐스팅보트로 평가받는다.
고려아연은 이번 임시 주총에 ▲집중투표제 도입 ▲이사회의 이사 수 상한 19명으로 설정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아울러 ▲이상훈 한국앤컴퍼니 사외이사 ▲이형규 인천도시가스 사외이사(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김경원 세종대 경영경제대학 석좌교수 ▲제임스 앤드류 머피 올리버 와이만 선임고문 ▲정다미 유니드 사외이사 ▲이재용 코드잇 사외이사 ▲최재식 KAIST 김재철AI대학원 교수 등 7명의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했다.
MBK파트너스와 영풍 측은 ▲집행임원제 도입 ▲사외이사 12명 및 기타비상무이사 2명 등 총 14명의 신규 이사 선임을 안건으로 냈다.
MBK·영풍이 추천한 신임 사외이사 후보는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 ▲김명준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김수진 변호사(전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전 금융위원회 비상임위원) ▲김재섭(DN솔루션즈 부회장(상근고문) ▲변현철 변호사(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손호상 포스코 석좌교수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 원장 ▲이득홍 변호사(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정창화 전 포스코홀딩스 미래기술연구원 원장 ▲천준범 변호사(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 ▲홍익태 전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 본부장 등 12명이다.
기타비상무이사에는 강성두 영풍 사장과 김광일 MBK 부회장 등 2명을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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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표심' 방향은… 중립 혹은 기권 가능성도
핵심 쟁점은 집중투표제 도입이다. 집중투표제란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의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주주는 이사 후보자 1명 또는 여러 명에게 의결권을 몰아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사 10명을 뽑을 때 1주를 가진 주주는 10표를 행사할 수 있다.MBK·영풍 연합의 지분율이 최윤범 회장 측을 앞서는 상황에서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3%를 초과하는 지분을 가진 주주는 초과분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규정에 따라 MBK 측의 의결권이 크게 낮아진다. 이 때문에 MBK 측은 집중투표제 도입을 반대하는 상황이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한국ESG연구소와 글래스루이스는 '찬성' 의견을, 한국ESG기준원과 ISS는 '반대' 의견을 각각 권고했다.
찬반 의견이 팽팽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결단이 다른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다. 원론적으로 국민연금은 집중투표제 도입에 찬성한다. 수탁자책임활동 지침에 따르면 정관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것에 반대하고 집중투표제 배제조항을 삭제하는 데 찬성한다.
하지만 한석훈 국민연금 수책위 위원장이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집중투표제가 '1주 1의결권' 원칙에 어긋난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 만큼 반대표를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사수 상한 설정에는 찬성할 것으로 보인다. 수책위 지침에 따르면 이사회 내 위원회 활동을 제약할 만큼 이사 수를 제한하거나 개별이사의 영향력을 무력화할 정도로 많은 이사를 두는 안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주요 자문기관들도 모두 찬성을 권고한 만큼 국민연금도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사 수 상한 설정은 집중투표제 도입과 마찬가지로 정관 변경 안건이어서 통과를 위해선 출석주주 의결권의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의결권을 3분의 1 이상을 보유한 MBK·영풍 측이 해당 안건을 반대하고 있는 만큼 통과 가능성을 예단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
국민연금 수책위가 여러 안건에 기권이나 중립을 선택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국민연금은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경우 기권이나 중립을 선택하고 있다. 국미연금은 앞서 2018년 KT&G 주주총회와 2024년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중립을 결정한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