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코리아가 지난해 법인세 부담을 크게 줄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조세회피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사진은 피터 알덴우드 애플코리아 대표가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등에 대한 종합 국정감사에서 굳은 표정을 보이는 모습. /사진=뉴스1
애플코리아가 지난해 법인세 부담을 크게 줄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조세회피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사진은 피터 알덴우드 애플코리아 대표가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등에 대한 종합 국정감사에서 굳은 표정을 보이는 모습. /사진=뉴스1

애플코리아가 지난해 법인세 부담을 크게 줄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조세회피 문제가 다시금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국내 기업과 달리 외국계 기업은 회계 내역을 확인하기 어려운 제도적 허점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글로벌 빅테크의 조세회피로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다국적 공조를 통한 규제 도입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애플코리아의 2024 회계연도 매출은 7조8376억원으로 전년(7조5240억원) 대비 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3013억원으로 전년(5599억원) 대비 46% 감소했다. 같은 기간 배당금은 3215억원으로 전년(1128억원) 대비 2.85배 증가했다. 사실상 애플코리아의 연간 영업이익을 초과하는 금액이 배당금으로 집행된 셈이다.


애플코리아의 배당금은 전액 애플 미국 본사로 이전된다. 애플 본사가 애플코리아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년 동안(2020~2024년) 애플코리아가 애플 본사로 보낸 배당금 규모만 1조4315억원에 달한다.

주목할 점은 판매비와 관리비가 3095억원으로 전년(2837억원) 대비 9% 증가하는 데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판매비와 관리비 등 부대 비용이 9% 증가에 그쳤음에도 영업이익이 크게 감소한 이유를 두고 애플코리아가 매출원가율(매출에서 매출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을 높여 영업이익을 전년보다 줄인 것으로 추정한다. 매출원가는 애플코리아가 본사로부터 아이폰, 아이패드 등 제품을 구매하는 비용을 의미한다. 매출원가율이 높아질수록 영업이익이 줄어들고 법인세 부담도 감소하게 된다.

지난해 애플코리아의 매출원가율은 92.2%로 전년(88.7%) 대비 상승했지만 법인세 납부액은 825억원으로 전년(2006억원) 대비 5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코리아가 지난해 납부한 법인세는 2023년 유사한 매출 규모를 기록한 국내 기업 ▲네이버(매출 9조6706억원, 법인세 4963억원) ▲카카오(매출 8조1058억원, 법인세 2417억원) 등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조세회피 의혹을 받는 기업은 애플코리아만이 아니다. 구글코리아의 법인세 납부 수준은 더욱 심각하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 교수와 강형구 한양대 경영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구글코리아는 2023년 국내 매출을 3653억원으로 신고하고 법인세로 155억원을 납부했다.

구글의 주요 서비스인 유튜브와 광고 수익, 구글플레이의 인앱결제 수수료 등을 고려할 때 신고된 매출 규모는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진이 구글의 경제효과 보고서 등을 분석한 결과 2023년 구글의 국내 실제 매출은 최대 12조13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구글이 신고한 매출의 33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이에 따르면 5180억원가량의 법인세를 냈어야 한다. 구글은 국내 앱마켓 매출을 싱가포르 법인(구글 아시아퍼시픽)에 귀속시켜 국내 매출에 포함하지 않는 방식으로 국내 법인세 등 조세 부담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글로벌 빅테크 기업 세무조사 거부해도 강제할 수단 없어

글로벌 빅테크의 조세회피로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다국적 공조를 통한 규제 도입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사진은 미국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본사의 전경./사진=머니투데이(구글)
글로벌 빅테크의 조세회피로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다국적 공조를 통한 규제 도입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사진은 미국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본사의 전경./사진=머니투데이(구글)

이 같은 상황은 국내 기업과의 역차별 문제로 이어진다. 정당한 세금을 내지 않는 외국계 기업의 비용 경쟁력은 자연스레 올라가는 반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은 약화돼서다. 실제로 네이버의 국내 검색 시장 점유율은 10여년 전 80%를 넘나들었으나 최근 몇년 동안 60%대에 머물러 있다. 구글의 점유율은 30% 수준이지만 유튜브 등의 검색 기능을 강화하며 시장 내 영향력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조세회피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제도적 공백이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국세청도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세무조사 거부에는 속수무책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세금 회피를 목적으로 세무조사를 거부하더라도 현행 법규상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어서다.

국세기본법 제88조에 따르면 기업이 과세 자료 제출을 기피할 경우 최소 500만원에서 최대 5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문제는 '하나의 세무 조사에 대해 한 건의 과태료만 인정'한다는 2021년 법원의 판례가 외국계 기업이 거액의 수익을 내고도 과태료 5000만원으로 법인세를 회피하도록 돕는 허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연간 수조원의 수익을 올리는 기업 입장에서는 과태료 5000만원을 지불하는 것이 법인세를 내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 되는 구조다.

정부는 국제사회와의 협의를 바탕으로 2027년 '디지털세'(Digital Tax)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쉽지 않을 전망이다. 디지털세는 일정 매출 기준을 충족할 경우 해당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서 세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제도로 애플·구글 등 자국 IT 기업을 정조준해야 하는 미국의 반대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프랑스가 2019년 디지털세를 도입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은 프랑스의 대표 수출품인 와인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경고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조세회피가 심화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한국이 단독으로 규제에 나서기보다는 다국적 공조를 통한 규제 도입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지원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조세 회피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최근엔 넷플릭스 일본 법인이 일본 이용자들로부터 받는 시청료를 넷플릭스 네덜란드 법인에 송신료 명목으로 지급하면서 이익을 과소 신고했는데 이러한 점에서 OECD 차원의 디지털세 도입 논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