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카이스트 교수의 인터뷰 사진. /사진=머니투데이DB

대한민국 최초의 전산학 박사이자 '클라우드' 개념의 창시자인 문송천 카이스트 명예교수가 이번 대선의 기술 유토피아적 공약을 비판했다. 특히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기술적·제도적 설계 부족을 지적하며 "제2의 테라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 공약에 대해서도 구조적 설계 없이 예산만 부풀리는 방식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가 제안하는 로드맵은 명확하다. 문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투자자가 아닌 설계자로서 데이터·컴퓨팅 인프라와 감시 체계를 먼저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 샌드박스가 아니라 '샌드백'처럼 충격을 흡수할 안전장치를 먼저 마련한 뒤 혁신을 시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 교수는 1980년대 초 세계 최초로 '클라우드'란 용어를 공식화했다. 국방·금융·방송 등 다양한 분야의 IT 인프라 설계를 경험했다. 1990년대 초반 블록체인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 분산 데이터처리 시스템 'DIME'을 개발한 블록체인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금융 상품이 아니라 전산 구조와 거버넌스가 맞물린 "종합 공학"으로 바라본다.

"담보형=안전" 공식은 착각…기술·금융 융합 설계 필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논의는 가상자산 산업 육성이나 투자 유치에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기술-금융 융합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게 문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안정적인 스테이블코인을 구현하려면 금융공학뿐 아니라 분산원장 기술, 스마트컨트랙트 보안, 키 관리체계까지 전반을 아우르는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이 담보형이라고 해서 무조건 안전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실물 담보를 표방했지만, 브릿지 구조 붕괴나 스마트컨트랙트 오류로 인해 환급에 실패하거나 디페깅 현상이 발생한 사례가 이미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일반적으로 담보 자산을 외부 기관이나 블록체인 시스템에 예치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용자에게 코인을 발행하는 구조다. 겉으로는 '1코인=1달러'라는 단순한 형태지만, 실제로는 다층적인 기술 인프라와 금융 구조가 얽혀 있다. 해킹, 오작동, 제어 실패 같은 전산 오류가 발생하면 곧바로 금융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브릿지 해킹·코드 오류가 담보 무력화…제도 없는 기술은 리스크

문 교수는 폴카닷 생태계의 aUSD가 코드 한 줄 오류로 담보 없이 12억 개가 발행되며 가치가 1센트로 폭락한 사례, 멀티체인(Multichain)·오르빗(Orbit) 브릿지가 해킹당해 수천만 달러 규모의 담보가 증발한 사례 등을 언급했다. 그는 "자산을 블록체인 간 이동시키는 브릿지가 해킹되면 준비금이 통째로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스마트컨트랙트는 사람이 작성한 코드에 따라 자동으로 실행되는 구조다. 문 교수는 "스마트컨트랙트는 완벽한 분산형이 아니다"며 "코드가 인간에 의해 작성되는 한, 해킹과 오류는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발행 전 보안 인증, 다중 체인 상호검증 장치, 담보 증빙의 실시간 공개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위믹스달러가 있다. 위믹스달러는 USDC 기반 100% 담보를 내세웠지만 연쇄적인 크로스체인 브릿지 해킹에 따라 담보 접근성이 상실되며 0.6~0.7달러 수준까지 가치가 하락했다. 문 교수는 이처럼 기술 설계만으로는 방지할 수 없는 리스크가 존재하며 법적·제도적 보완이 병행되지 않으면 안전성 확보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담보를 은행에 예치하는 구조 역시 전적으로 안전하다고 보기 어렵다. 2023년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USDC는 한때 0.88달러까지 하락했다. 문 교수는 "준비금 보관처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화된 담보 시스템은 단일 장애점(SPoF)과 규제 리스크, 파산 리스크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BUSD(바이낸스 달러)의 사례도 있다. 뉴욕 금융당국이 발행 중단을 명령하자 신규 발행이 막혀 유통량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문 교수는 "발행사가 규제당국의 지시에 따라 곧장 멈출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위험"이라며 발행사의 지배구조와 운영 체계 역시 법제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설계없이 공약만 앞서는 한국… '사후'가 아닌 '사전'이 더 중요해

그는 한국의 상황을 사고 뒤에 규제가 따라가는 구조라고 우려한다. "해킹은 완전히 막을 수 없지만 해외는 제도적 안전망을 마련한 후 발행을 허용한다"고 설명하며 한국은 제도 없이 발행 논의부터 시작된 점을 지적했다.

미국이 추진중인 GENIUS 법안은 모든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100% 현금 또는 단기 국채 준비금 보유, 연례 외부 감사,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 2년 금지 조항 등을 포함한다. 싱가포르 통화청(MAS) 역시 승인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1:1 상환 보장, 월간 준비금 공시, 발행사의 자본 조건 등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의 제도 설계에 있어 한국은행의 직접적 역할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통화 안정과 외환시장 교란 요인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금융위나 과기정통부가 아닌 한국은행이 제도 설계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발행사 요건, 담보 자산 운용, 회계 공시 등의 기술적 사안은 물론, 통화 정책과 연결된 환율·자본 흐름에 대응할 수 있는 거시 경제 기관의 개입 없이는 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술과 금융이 맞물린 복합 구조인 만큼, 정부는 '투자자'가 아니라 '설계자'의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는 게 문 교수의 결론이다. 민간 기술 실험의 영역이 아니라 공공 통화 인프라의 일부로 접근하자는 시각이다.

AI 공약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ChatGPT 개발비가 2~3조원인데 왜 100조원을 쓰려 하느냐"고 반문하며 정부가 벤처캐피털처럼 돈을 직접 집행하는 구조는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돈이 아니라 데이터 인프라를 깔아야 한다"고 말한다. 선진국이 AI 안전협약과 법률을 통해 거버넌스를 먼저 구축한 사례를 들며 한국도 시스템 설계 없이 예산만 부풀릴 경우 "제2의 대장동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